결코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노자도덕경 5장의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풀 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의 의미가 새로운 것은 인간이 만든 온갖 것들에 대한 회의와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선거니, 월드컵이니 하는 사건들, 그리움이니 사랑이니 하며 떠드는 관념들, 지진과 화산 폭발,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잣대를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은 복마전이고, 판도라의 상자이다. 안으로 파고들수록 알 수 없는 세계,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한 생이 끝나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을 넘어서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물질의 만족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을 넘어서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궁핍과 좌절 속에서 분노와 패배감을 배우지 않고 오히려 화해를 배우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가 타자가 아닌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자각을 지닌 존재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들은 바로 시인들이다. 시인들은 말을 다루면서 말을 아끼고, 말로써 세상의 강철 같은 껍질을 부숴내려고 한다. 강철에 온몸을 부딪치면서 자신의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핏방울로 자신을 증언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코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는 강한 부정은 그 속에 강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아름답기 때문에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天地不仁을 노래하는 아름다움을 시인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힘' 부분 / 나호열
'나호열 시인 > 세상과 세상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의 힘 (0) | 2009.05.18 |
---|---|
여름날 소내에서 지은 잡시[夏日苕川雜詩] 1781년 (0) | 2009.05.11 |
예술가는 불멸을 꿈꾼다 (0) | 2009.04.24 |
시간의 퇴적과 母川 회귀의 여정 (0) | 2009.04.14 |
봄날 배를 타고 소내로 돌아오며[春日舟還苕川] 1785년 (0) | 2009.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