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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신라 천년 마애불’ 앞얼굴 언제 보나

by 丹野 2009. 4. 27.

 

‘신라 천년 마애불’ 앞얼굴 언제 보나

한겨레 | 입력 2009.04.27 20:20 |

 


[한겨레] 경주 남산서 쓰러진 채 발견 2년째…훼손우려 석축쌓기만


"문화재연구소, 모형실험 등 적극 복원의지 보여야" 비판

바위 부처의 인내는 중생을 울렸다. 드넓은 세상 보지 못하고, 1000여년전 고꾸라져 그간 땅바닥만 보며 견뎌온 세월. 야속한 시간 이겨내고 마침내 순박한 옆 얼굴 드러낸 바위 부처, 마애불의 무량 공덕에 후대인들은 옷깃을 여민다. 신라인들의 이상향이던 경주 남산 열암곡 옛 절터에 세워진 뒤 '뚝'하고 엎어진 8~9세기 통일신라 마애불. 다음달이면 이 부처가 거꾸로 엎드려 세상에 다시 나온지 2년째가 된다.

키만 6m가 넘는 열암곡 마애불은 2007년 발견 당시 오똑한 코와 잘 생긴 얼굴상이 바닥 암반과 불과 5cm 거리를 두고 온전히 보전된 탓에 '5cm의 기적'으로 일컬어졌다. 행인지 불행인지 바위 부처는 철망쳐진 것 외엔 아직도 발견될 때 상황 그대로 굳어있다. 지금도 온전하게 돌린 맨얼굴을 만날 기약이 없다. 복원·정비를 맡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 쪽은 그동안 여러모로 고민했으나, 부처의 맨얼굴을 돌리고 다시 세울 묘안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마애불 주변은 40도 가량 급경사진 계곡 상부에, 좁은 오솔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닿는 오지. 크레인, 발동기 등의 대형 설비를 들여오려면 큰 길을 내는 등 산의 경관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연구소는 재작년 11월 이와 관련해 문화재 운송·보수업체들로부터 복원안을 공모해 4군데를 심사했다. 카센터에서 쓰는 유압잭, 인력 비계, 대형 크레인, 지지대(앵커) 등을 쓰는 안이 나왔지만, 심의 결과 모두 탈락했다. "주변 경관 파괴는 물론 문화 유산의 안전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이유다. 이후 복원 공모는 다시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마애불 바위(70t)에 대한 안전 진단 결과에서는 "상당한 풍화가 진행되어 옮기려고 강한 힘을 가할 경우 훼손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구소 쪽은 복원에 더욱 소극적인 쪽으로 돌아섰다. 지병목 소장은 "주변 여건으로 미뤄 좀더 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경주시 쪽은 마애불 주변 석축 쌓기에 주력하는 낌새다. 마애불 바로 아래가 절벽과도 같은 급경사여서 해빙기나 장마 때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보강하려는 것이다. 지난 1월 떨어진 몸과 머리를 다시 붙여 복원한 바로 옆 열암곡 석불좌상 부근의 석축 공사를 하면서 같은 절 영역인 마애불 주위에도 석축 공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인공 석축을 쌓을 경우도 세계문화유산인 남산의 자연 경관을 파괴할 수 있어 흙과 돌을 대량으로 마애불 앞에 다져올린 뒤 잔디를 덮고 경사도를 낮춰 너비 5m이상의 평탄 대지를 조성해야 한다. 마애불 앞에 그 정도 공간이 확보되어야 불상을 바로 세울 작업 공간과 관람 동선을 확보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경관과 안전성을 고려해 석축 설계안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석축 공사도 올해 안에 끝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산속에서 무너진 대형 석조 문화 유산을 세운 전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굳이 끌어 붙인다면, 프랑스가 19세기초 길로틴(단두대) 처형장으로 쓰였던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이집트와 교섭 끝에 들여와 조성한 오벨리스크 탑이 있다. 이집트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옮겨 세우는데만 5년 이상 걸린 이 오벨리스크탑은 파리 도시 미화 계획의 하나로 세워졌다. 탑 앞에 거대한 경사로 모양 지지대를 쌓고 사방에 탑과 줄로 연결된 대형 비계들을 설치해 수천여명이 인력으로 끌어올려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벨리스크는 평지에 세운 것이므로 급경사에, 수풀이 울창한 남산의 환경과는 다르다.

연구소 쪽은 석축을 쌓고나서 마애불을 돌려 눕힐지, 현 상태로 놓아둘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복원은 그 다음 문제다. 학계 일각에서는 "연구소가 눈치만 보고 미니 모형 실험 등의 적극적인 복원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서 "소심한 행보"라는 비판도 흘러 나온다. 콧날이 멋진 열암곡 마애불의 미소를 정면에서 볼 날은 언제일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출처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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