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여관, 물소리
심재휘
수몰된 것들의 마음이 밤새
자욱하게 내려앉아 내가 든
안동역전 여관방에는 어디로 가는지
첫 기차 소리가 축축하였는데
미명 속으로 멀어지는 누군가의
젖은 발소리도 용서하고 싶었는데
창가에 놓아둔 선인장의 적의에 놀라
세수를 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다시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면 저 기차
안동이 종착지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방 어딘가에 숨어 이따금
커튼을 흔드는 바람
그런데 바람도 뚫을 수 있을까
여관방에 안개처럼 기어든 새벽의 소리들은
모두 젖어 한 방울씩 떨어져 보는데
낡은 수도꼭지의 쉽게 잠기지 않는 생은
그러나 때가 낀 세면대에 잠시 머물다가
온수든 냉수든 길고 어두운 하수도관을
따라가면 그뿐 그러면 좁고 더러운 여관방에는
내 몸 사라지고 오래도록 물소리만 가득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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