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자재암 p r a h a
나비 그림자를 움켜쥐다 / 김경성
삼성각 처마 밑에 앉아
자재암 지붕 위로 미끄러지는 햇빛을 읽는다
초겨울 볕은 시리고
한 나무가 한 나무의 속으로 들어가
엉킨 실타래처럼
풀 수 없는 그림자를 만들어서
서리꽃 끌어내지 못하고 나뭇잎 소름 돋았다
긴 잠에 들었었나
너무 늦게 우화하여 파르르 날개 떠는
나비 한 마리
손만 내밀어도
부서질 것 같아, 그림자 움켜쥐고 말았다
나비의 날개가 짊어지고 가야 할
떨어지지 않고 흔들리는, 저 그림자
살아있음의 흔적이다
서리꽃 맨발로 짚고 날개 파닥거리며
먼 곳에 있는 꽃들을
맨몸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산벚나무 가지 타고 줄줄이 흘러내리는
겨울 볕에
눈이 멀 것 같다
햇살 분지르며 너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우화를 꿈꾼다
2008년 2월 녹색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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