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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 나희덕

by 丹野 2006. 2. 21.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나희덕

 

 

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빛마저 곱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