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대 2012년
시에서의 역설
정유화
공광규 시인의 시적 기법인 역설은 악을 통해서 선을, 혹은 허위를 통해서 진실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그의 역설에서는 대부분 대립되는 두 개의 대상이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두 존재가 표면적으로 확연하게 대립되는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만약에 처음부터 양자(兩者)의 대립이 나타난다면 시는 재미와 감동을 잃고 시적 의미만 뼈대처럼 단조롭게 남게 될 것이다. 그의 역설의 특징은 대립되는 두 대상이 처음에는 동일성을 공유하다가 나중에 그 차별성을 드러낸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동일성에서 차별성으로 전환되는 그 시점에서 시적 감동과 시적 메시지가 미학적으로 산출되고 있다. 역설에 의한 시적 메시지를 다음 시를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상해박물관이 소장한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을 해제한
공자시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른 소감
-도굴꾼님, 감사합니다
도굴꾼이 없었다면
진흙이 덕지덕지한 초나라 귀족의 무덤 속에서
이 죽간이 나와 햇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
그러면서 시인도 도굴꾼이라는 생각
당국의 허가 없이 합법적 절차 없이
당신의 허락도 없이 마음을 훔쳐 햇살을 보게 하는
당신은 마음을 도굴당한 적이 있나요?
죽간처럼 햇볕에 나와 누구에겐가 한 줄이라도 읽힌 적이
그렇더라도 시인이 다녀간 것이니 안심하시길
, -공광규의「도굴꾼」전문
이 텍스트에서 대립되는 존재는 도굴꾼과 시인이다. 주지하다시피 도굴꾼은 고분이나 무덤에서 그 매장물건을 몰래 캐내어 불법적으로 파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리고 도굴꾼은 그 물건의 고유한 가치에 목적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매매하여 얻을 수 있는 돈의 가치에만 목적을 둔다. 이에 비해 시인은 그러한 불법의 세계, 물질에 대한 탐욕의 세계를 비판하고 인간적인 가치와 진리를 추구하는 지고한 정신적 존재이다. 그만큼 도굴꾼과 시인은 다른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이 텍스트에서 도굴꾼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도굴꾼에 의해 공자의 시론이 적혀 있는 초나라 죽간이 무덤에서 나와 햇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원인으로 보자면 도굴꾼은 감사의 대상은 아니다. 지탄 받아야 할 대상인 셈이다. 합법이 아닌 불법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적 화자는 한 술 더하여 “시인도 도굴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인도 합법적 절차 없이 남의 마음을 훔쳐 햇빛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도굴꾼과 시인의 행위 그 자체를 보면 양자 모두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보면 도굴꾼과 시인은 행위적인 양식을 공유하는 동일성의 존재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동일성은 표면적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것이 진실이라면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 판을 치는 웃기는 세상이 될 것이다. 공광규 시인이 도굴꾼과 시인의 존재를 동일한 형식으로 언술한 것은 다름 아니라 역설적으로 양자가 지닌 내재적 가치의 차이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면 도굴꾼을 통해서 시인의 존재적 가치를 더욱 크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요컨대 역설의 장치인 것이다. 도굴꾼에 의해 죽간이 햇빛을 보았지만 도굴꾼에게 죽간은 하나의 단순한 물건(물질)에 불과하다. 곧 돈으로 환산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도굴꾼은 죽간의 내재적 가치(공자시론)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시인 역시 당신의 마음, 곧 남의 마음을 도굴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돈으로 환산되는 물건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내재적 가치, 곧 존재론적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내면적인 이러한 차이성, 차별성에 의해 시인의 존재는 크게 부각된다. 이 텍스트에 의하면, 시인의 존재는 “마음을 훔쳐 햇살을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곧 “마음”이라는 불가시적인 세계를 “햇살”이라는 가시적인 세계로 창조해내는 역할을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한 줄의 햇살’은 ‘한 줄의 시’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없다면 우리는 당신의 마음인 그 오묘한 불가시적인 세계를 영원히 읽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시인의 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다.
바닥을 드러낸 겨울연못을 보면
어떻게 저런 바닥이 푸른 연잎과 꽃을 피워 올렸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늙은이의 뼈처럼 부러진 삭정이가 쌓이고
과자봉지와 깡통이 굴러다니는
묶였던 것이 빠져나간 매듭이 있는 플라스틱 끈과
도로를 질주했던 페타이어가 처박힌 바닥
바닥을 가리던 푸른 연잎과 붉은 꽃이 시들자
마른 꽃 대궁은 얼른 허리를 꺾어
연못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을 것이다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도덕군자처럼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처럼
치부를 가려 상황을 모면하려는 부패한 관리처럼
- 공광규의「바닥」전문
도굴꾼인 시인은 인간들의 마음을 훔쳐서 햇살에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상 속에 감춰져 있는 허위의 세계, 가식의 세계를 드러내어 그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부연하면 어둠속에 감춰진 불법의 세계를 밝음 속으로 끄집어내어 그 실체를 공개하는 것이다. 특히 공광규 시인에게는 후자에 해당하는 시적 세계관이 그 미학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거두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은 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적 모습이다. 사실 이것은 ‘도굴꾼’과 ‘시인’의 대립적 코드를 ‘인간’과 ‘자연’의 대립적 코드로 변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곧 그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전자와 후자는 무관한 것이 아니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 텍스트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은 바로 겨울연못이다. 그런데 물이 가득했던 여름연못과 달리 현재의 겨울연못은 바닥이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겨울 이전까지 그 곳에서 살다가 죽은 식물들의 흔적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공광규 시인이 드러내고 하는 부분은 바로 겨울연못의 바닥이다. 그 바닥은 물이 가득 고여 있을 때에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숨겨진 부분이다. 그러므로 겨울연못의 바닥은그 치부를 드러내는 셈이 된다. 물론 그 바닥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연못이 온전한 생명체의 공간인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자연의 원리만 작동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겨울연못이 그 바닥을 드러내자 그 곳은 생명체의 세계가 아니라 생명이 살 수 없는 쓰레기의 공간이었다. 아니 쓰레기의 무덤이었다. 과자봉지, 깡통, 플라스틱 끈, 폐타이어 등이 처박혀 있는 무덤이었다.
예의 생명체를 죽이게 하는 쓰레기의 무덤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연못은 자연의 원리만 작동되었던 곳이 아니라 인간의 원리도 몰래 작동되고 있었던 곳인 셈이다. 문제는 인간의 원리가 자연의 원리와 합일되어 상생을 추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연의 원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연못에 살던 “푸른 연잎과 붉은 꽃이 시들자/마른 꽃 대궁”들이 이제 생명을 버리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의 생명은 뿌리에 있다. 그런데 인간의 부패한 삶의 원리가 몰래 그 뿌리에 침범하여 그 뿌리의 존재근거를 말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연은 “푸른 연잎과 꽃”으로 가려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도덕군자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언술인가. 이로 미루어보면 연(蓮)보다 못한 존재가 곧 인간이다. 이처럼 공광규는 시인으로서 시인의 임무를 진솔하게 수행하려고 한다. 예의 그 임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불의든 정의든 숨겨져 있는 대상들을 이 세상으로 끄집어내어 그 실체를 가시적,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
*정유화 :?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미소를 가꾸다』등이 있다. 중앙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시립대 강의 전담교수(본지 편집기획 집필위원)
― 제14호『시산맥』2013. 여름호
* 비고
< 시에서의 역설>은 이 글을 옮긴 이가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출처 / 세상과 세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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