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김명기
못 주머니를 찬 사람이 떨어졌다
낮달과 해 사이 그가 쳐 대던 못처럼 박혔다
점심을 나와 함께 먹었던 사람
맞물리지 않은 비계에 발을 헛딛고
허공에서 바닥으로 느닷없이 떨어졌다
짧은 절명의 순간에도 살겠다고 몸부림쳤지만
안전모가 튕겨져 나가고 박히지 않은 못이 먼저 쏟아졌다
세상 한 귀퉁이에서 이름 없이도 살아보겠다고
낡은 안전화를 끌고 날마다 비계를 오르던
늙은 목수가 남긴 유산이라곤 허름한 못 주머니와
상처투성이인 안전모와 조악한 싸구려 안전화가 전부였다
자기 전부를 걸고 일하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이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구급차가 달려올 때 마디 굵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서려던 사람이 끝내 숨을 거두고
현장은 서둘러 정리되었다 장국에 말은 밥을
크게 한술 뜨며 했던 그의 말이 자꾸만 거슬렸다
못질할 때 말이여 첫 대가리만 때려보면 알어
단박에 들어갈 놈인지 굽어져 뽑혀 나올 놈인지
낮달과 해 사이에 박혀버린 그는 어떤 못이었을까
악을 쓰며 짖는 개에게
김명기
나도 살자고 한 일이라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디 갈 곳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기억하는 것을 지우고
숙명이란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관계는 참 비통하지
버리고 돌아선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어디선가 속죄를 대신할 사람이
너를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끊임없이
왜냐고 묻고 있지만 대답해줄 수가 없다
공손한 너를 데리고 저녁 한때를 걸어가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오직 오늘만은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는 우리는
같은 족속일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는 아나키처럼
서로의 슬픔을 막아서는 중이다
더 이상 맨발인 너를 위해 해줄 게 없구나
곧 체념이 친구처럼 옆에 와 누울 것이다
쏟아붓는 기원과 비통은 회랑으로 흩어질 뿐
아가 쉰 목을 내려놓고 그만 밥을 먹자
어제와 다른 첫 밤이 오고 있다
—계간 《열린시학》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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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 1969년 경북 울진 출생.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강원도 태백에서 성장. 2005년 《시평》 겨울호로 등단. 시집 『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 『종점식당』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제22회 고산문학대상 수상
-출처 / 푸른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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