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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사진과 인문학/파미르 고원

내소사 꽃살문 #1

by 丹野 2022. 4. 16.

 

 

 

 

 

 

 

 

 

 

 

 

 

 

 

 

 

 

 

 

 

 

 

 

 

 

 

 

 

 

 

 

 

 

 

 

 

 

 

오래된 나무가 있는 풍경 / 김경성

 

 

 

꽃송이 솟아있는 꽃살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의 생이 보인다

시들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서

꽃잎 낱장마다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기억되어 있다

 

우리의 생보다 더 오래, 몇백 년 동안

고마리꽃 쏟아지는 개울물까지 뿌리 뻗어서

잎맥마다 서늘하게 마음 두었을 것이므로,

저 꽃살문 속에서는 지금도 한 그루의 나무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빛도 뚫지 못하는 꽃잎, 향기 그윽하다

문 이쪽과 저쪽

수수만년 동안 닿지 못하는 경계 너머에 너는 있고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는 울고 있다

 

꽃잎 흔들리도록 문을 열어도 닿을 수 없다

어서 오라고

어서 와서 눈물 닦아내라고

그대가 심어놓은 매화 한 그루, 늦가을에 꽃 벌창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향기

휘청휘청 소름 돋는다

 

늙은 자목련 굽이굽이 휘어진 가지 끝마다

꽃눈 틔워서 풍경소리 어루만지고

티티 티티

가을볕, 꽃살문에 기대는 소리 터진다

오래된 나무가 내는 꽃잎의 소리를 마시며

자북자북 쌓이는 꽃 그림자 거두어서

문 너머 닿을 수 없는 

너의 심장 근처까지

향기 흘려보낸다

 

깃털 잃은 새들,

흰 뼈 마디마디에

날갯짓으로 쓸어놓은 길의 지도를 돋을새김하는

늦가을이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년

 

 

 

 

<시 읽기>

 

꽃살문이란 문살에 꽃모양을 새겨 만든 문을 말한다. 주로 사찰문에 많이 새겨 넣는데

그 종류를 보면 매화, 연꽃, 모란, 살구꽃, 국화 등이 있다. 문의 외형은 꽃모양이나 그 속은

 ‘한 그루 나무가 숨 쉬고’있는 문. 나무가 꽃이 되어 오랜 시간을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꽃살문은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그 곳엔 ‘나무의 생’이 들어 있다.

오래된 나무 결에 새겨진 꽃 그림. 시들지 않고 나무와 함께 모양을 유지면서‘오래된 시간의

 향기’로 진하게 전해온다. 나무에 꽃 그림을 새긴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지켜지는

저 멀리엔 나무의 꽃눈이 틔어 풍경(風磬) 울린다.

참으로 오랫동안 꽃살문을 생각하며 썼을 시에 빠져 마음의 꽃살문을 깊고 깊게 새겨 본다.

 

- 이대의 시인

 

 

-『우리詩』12월호- 시읽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틀 전 4월 5일 내소사에 다녀오신 분의 사진에 벚나무 꽃봉오리가 보였습니다.

 

4월 7일 따뜻한 날씨로 모든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간절하게 닿아서일까요? 봄꽃 절정일 때 닿은 적이 없어서 

설레임 가득했는데 내소사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환했습니다.

멈추어 서서 바라보는 하늘은 온통 꽃무늬, 연두 이파리 무늬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간절히

성호를 그은 저에게

신께서 저의 이마 위에 손을 얹어주시는 것인지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 .  (플로라)

 

꽃살문을 찍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대웅전 어간문이 열리더니 오후의 빛이 꽃살문을 비췄습니다.

한순간 꽃이 피어나고

벚나무와 꽃 문과 제가 오후의 빛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빛이 저에게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빛금 그으며 내게로 쏟아지는 행복은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격포 숙소로 돌아온 저는  인디고 블루 하늘에 걸린 초승달을 보면서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목련, 벚꽃, 만첩 홍매 환하게 피어서 꽃 너머로 바라보는 꽃살문을 꼭 보고 싶었는데

이십 여 년 만에 저에게로 온 것입니다.

 

 

2022년 4월 7일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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