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태안 고선박은 600년전 쌀 운반선"..첫 조선시대 배 판명

by 丹野 2015. 8. 29.

 

 

"태안 고선박은 600년전 쌀 운반선"..첫 조선시대 배 판명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마도 4호선' 발굴조사 중간발표 조선 관아 명칭 쓰인 목간, 분청사기 발견

연합뉴스 | 입력 2015.08.26 08:06

 

 

 

마도 4호선에서 나온 목간. '나주광흥창'이라고 적혀 있다. <<문화재청 제공>>

 

 

마도 4호선에서 나온 목간. '나주광흥창'이라고 적혀 있다. <<문화재청 제공>>

 

 

 

 

마도 4호선에서 나온 분청사기. <<문화재청 제공>>

 

 

마도 4호선에서 나온 분청사기. <<문화재청 제공>>

 

 

 

 

바다에 파묻혀 있는 마도 4호선. <<문화재청 제공>>

 

 

바다에 파묻혀 있는 마도 4호선. <<문화재청 제공>>

 

 

 

마도 4호선에서 나온 분청사기. '내섬'이라고 적혔다. <<문화재청 제공>>

 

마도 4호선에서 나온 분청사기. '내섬'이라고 적혔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마도 4호선' 발굴조사 중간발표

 

조선 관아 명칭 쓰인 목간, 분청사기 발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지난해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 '마도 4호선'이 한국 수중고고학 사상 최초의 조선시대 선박으로 확인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지난 4월 22일부터 마도 4호선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광흥창'(廣興倉)이라고 적힌 목간, '내섬'(內贍)이라고 쓰인 분청사기 등 유물과 견고한 선박 구조로 미뤄 이 배가 조선 초기 조운선(漕運船)으로 보인다고 26일 밝혔다.

조운선은 지방 창고에 있는 조세미(租稅米)를 도읍에 있는 창고인 경창(京倉)으로 운반하던 선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고선박은 마도 4호선을 제외하면 13척이다. 그중 10척이 고려시대 배이고, 2척은 13∼14세기 중국 선박, '영흥도선'으로 명명된 1척은 통일신라시대 배다.

조선시대 마도 해역에서는 무수한 배가 침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시대의 배가 실물로 출현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선박 안에서 글을 쓴 나뭇조각인 목간 60여점이 출수(出水)됐는데, 대부분 출발지인 나주와 종착지인 한양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 적혀 있었다.

일부 목간에서는 곡물의 양과 종류를 의미하는 문자인 '두'(斗)와 '맥'(麥)이 나오기도 했다.

연구소는 목간의 글자가 마도 4호선이 전남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거둬들인 세곡이나 공납품을 광흥창으로 옮기는 배임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광흥창은 고려시대 설치돼 조선시대까지 존속한 관리들의 녹봉 관리 기관이다.

아울러 선내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 140여점 중 3점에서는 조선시대 궁궐 물품을 담당하던 관아인 내섬시(內贍寺)를 뜻하는 '내섬'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또 분청사기에 중앙부는 문양을 성글게 넣고 주변부는 국화나 새끼줄 무늬를 빽빽하게 새기는 15세기 초반 제작 양식이 사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연구소는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마도 4호선이 1410∼1420년대 나주에서 물품을 싣고 광흥창으로 향하다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함께 배에서는 벼와 보리, 조선시대 편찬된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주 공물로 기록된 대나무와 숫돌, 조선시대 도량형을 유추할 수 있는 곡물 가마니도 출수됐다.

현재 마도 4호선은 마도 북동쪽 해역의 수심 9∼15m 지점에 파묻혀 있으며, 오른쪽으로 50도 기울어져 있고 뱃머리는 남동쪽을 보고 있다. 밑판 3열과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와 선미의 자재가 일부 남아 있는 상태다.

배의 규모는 마도 해역에서 이전에 발견된 선박과 비슷한 길이 13m, 폭 5m, 깊이 2m이며, 형태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으로 파악됐다.

뱃머리 판재는 고려시대 배와 조선시대 군선이 세로로 설치한 것과 달리 가로로 배치하고, 좌우 판재를 연결하는 나무는 고려시대에 쓰인 원통형 목재보다 튼튼한 횡강력재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지난해 마도 4호선이 발견됐을 때 주변에서 인양된 18세기 백자 110여점과 배에서 출수된 분청사기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마도 4호선이 가라앉은 뒤 해저에 파묻히고, 이후 그 위에 백자를 실은 배가 침몰했거나 백자가 떠내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병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마도 4호선은 조선시대 공물 운송 방식인 '조운'에 대한 최초의 실증 자료로 해양사, 경제사, 도자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