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시냇물을 따라 간다 / 고성만
— 길 1
냇물이
필터로 거른 것같이 맑아졌다
등성이에서 산마루로 바람 불어가듯
해 뜨는 쪽 향하여
가지 뻗는 나무들의 숲
언젠가 잃어버렸던 악기를 연주하는 우듬지 근처
여태 발음하지 못한 말들이
가만가만 흔들리는 물 속
골짜기 사이
또 골짜기 지나
귀를 씻으러 간다
검은 그림자 흰 여백 안으로
몰래 다가가고자 했지만
끝내 들키고야 말았던 발자국 소리로
가도
다 못 가고
다시 돌아오는 길 위
산죽이 발처럼 둘러쳐져 종일 사운거리는 언덕
빈 하늘에 걸린 낮달 가져다가
한 종지 떠서
찻물 끓인다
—《시산맥》2011년 여름호
'이탈한 자가 문득 > 향기로 말을거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기석 / 허공의 장례 (0) | 2011.08.20 |
---|---|
Tuesday Bar 님 / 돌아가 자미꽃 여울에 눕고 싶네 (0) | 2011.08.20 |
박미라 / 백악기를 읽다 (0) | 2011.08.16 |
이영광 / 직선 위에서 떨다 外 (0) | 2011.08.16 |
이영광 / 그늘에 살며 빛 찾는 사람, 그게 시인 (0) | 2011.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