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생각] 이 곳에 명주바람, 잎샘바람, 소소리바람 건듯 불어 와 | |
5백 년을 살아온 동백나무 줄기 끝에서 돋아난 새 잎. | |
[2011. 3. 28] | |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반가운 동백나무 줄기. | |
건듯 불어오는 바람을 수굿하게 바라볼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여서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끄집어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일기 예보에서 빠짐없이 바람의 방향을 굵은 화살표로 표시해서 보여줍니다. 일시적이겠지만, 바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죠.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를 스치는 바람의 흐름을 확인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요즘의 위태로운 일상이지 싶습니다. | |
겨울에 피어나는 꽃이건만 매운바람 피해 명주바람 맞으며 피어난 납매 꽃. | |
최근 벌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해도 해마다 이 즈음이면 바람결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지곤 합니다. 봄 기운 머금은 상큼한 봄 바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인 때문이지요. 하루하루 바람 결에 봄 햇살의 따스한 기운이 담긴 걸 또렷이 느낄 수 있는 계절이지만, 또 간간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움츠리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삼월 춘설이 험악하게 흩어지던 지난 주가 그랬지요. | |
꽃샘바람 사이로 불어오는 가만바람에 살그머니 꽃잎을 연 크로커스. | |
계절과 무관하게 살살 부는 바람으로 '실바람', '가만바람', '가만한바람'이 있습니다. 실버들 가지가 살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어서 '실바람'이고, 가만가만 부는 바람이어서, '가만바람' 혹은 '가만한바람'이라고 합니다. '가만바람'은 북한에서 흔히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살살 부는 바람이지만, 특히 보드라운 봄 기운이 담긴 바람을 따로 '명주바람' '명지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 |
봄 기운 한 가득 머금은 꽃바람 타고 꽃잎을 활짝 펼친 영춘화. | |
이른 봄에 부는 또 하나의 차가운 바람으로 '소소리바람'이라고 부르는 바람이 있습니다. 봄샘바람과 달리, 이른 봄에 살갗을 엘 듯 사납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가리킵니다. 가을에 부는 차가운 바람을 '소슬바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봄에 부는 차가운 바람을 따로 나누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겨울 되면 이 바람은 더 사나워지지요. 그래서 겨울에 부는 바람은 '매운바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때로는 이 계절에 부는 바람이 '매운바람' 못지않게 사납게 몰아쳐도 봄에 부는 바람을 '매운바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봄 향한 기다림이 컸기 때문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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