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이풀 네이버포토갤러리
산오이풀
배종환
들어서니 풋풋한 향이 가득하다
거실에 누운 오이덮은 얼굴에게
나 왔다는 신호로 발을 툭 건드리니 손사래만 친다다시 나가라는 뜻인지 돌아서다
그 시절의 냄새 따라 생각도 따른다
살짝 젖가슴을 감싸면
좋은 듯 부끄러운 듯 미소를 띠고
오이채 썰다 돌아보는 여자는 어디로 갔나
그 날 밤 자다 깜짝이야
옷걸이의 양복이 타고 있다
불똥이 뚝뚝 떨어지며 활활 타고 있는
해몽 못할 어떤 징조일까
타는 목이 두리번거린다
시원한 오이냉국, 어디에 두었을까
비 그친 신새벽 걸어갈 때
바람에 쫓겨 투신하는 물방울의
감촉에 나는 상큼해진다
햇빛 쏟아지는 공간으로 엷은 안개가
조금은 적막하게 가로막는 숲길을 걷는
그것만으로 생각나는 세석평원으로 가야겠다
가거든 사치스럽게 핀 산오이풀 씹으며
의아한 얼굴의 오이 향으로 남겠다
『시애』2010년 제 4호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흩어지는 꽃잎
- 배종환
늘어진 고무줄을 다시 쪼이고
바지춤을 추썩거린 뒤
나는 전생이 돼지였을까
항상 배가 고프다
형제의 중간은
귀염 하나없는 잉여인간이다
그러니까 불행히 누룽지를 좋아하게 되었다
살얼음낀 우리를 벗어나
닭살처럼 솟은 소름을 안고 학교간다
부러웠다, 가방끼고 나란히 걷는
비리붙은 돼지들의 입김이 하얗다
소름이 햇빛 따라가면
햇빛은 힘있는 돼지 몫이다
절구통에 맞아 죽은
생선대가리며 뜨물을 허겁지겁 먹고
종소리에 맞쳐 문을 연다
웅성거리는 돼지들이 가득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
불판 위로
국밥 집으로
족발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빛나는 졸업가
그 노래가 어제일 같다
격월간『서정문학』7~8월호
출처 / daum블로그 폴래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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