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 / 김충규
물 속에 잠긴 달이 처연해서 손가락에 물을
묻혀 내 마른 눈썹에 발라보는 밤,
눈썹이 가늘게 떨리는 소리
물 위에 뚝뚝 떨어진다 물 속의 달이
거기 자리잡고 살겠다는 듯
환하고 가느다란 뿌리를
사방으로 뻗고 있다 그 뿌리들 사이에서
칭얼거리는 물고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들과 함께 나도 돌아다니고 싶다
물의 표면 고요하지만 물 속은
물고기들이 일으킨 물결로 사나워진다
그 일렁거림에 몸을 맡기면 지느러미가 없이도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물 속 저 환한 것이 달이 아닌
헛것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헛것이라도 나는 달이 좋아요
저 달이 태아처럼 부풀고 있잖아요
갑자기 내 배꼽이 아려요
태아시절의 내 탯줄이 그리워요
내 젖은 눈썹 위로 떨어진 달빛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내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물 속으로
얼굴을 비춘다
헛것! 내 얼굴이 안 보인다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대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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