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
종점식당 / 김명기
바람이 읽어 내리는 경전소리인 듯
촌스러운 얼룩무늬 차양 펄럭이는
그 집 추녀 끝으로
막 점등한 알전구 불빛 같은 노을
깃드는 저녁
듣는 이 없는 늙은 중의 염불처럼
혼자 웅얼대는 텔레비전 소리 등지고 앉아
조림반찬 몇 가지와 장국 한 그릇 놓고
오랜 중독처럼 혼자 먹는 밥
미명微明을 허물 듯 밥을 허물면
바닥을 드러내며 점점 가벼워지는 밥그릇
종점이란 말도 이곳으로 오는 모든 길 위에
제 몸을 다 비우고 마침내 본산本山에 이르는
순례의 다른 말인 듯 하여
여기서 몸 수그리며 밥 먹는 일은
길나서는 세상 모든 허물어진 것들에게
뼈마디처럼 단단한 마음을 다해
간절한
아주 간-절한 경배를 올리는 일
- 계간 《미네르바》2010년 여름호
[시 읽기]
시를 대하는 자세가 사뭇 경견해진다. 대하는 일상 모든 일에 신성이 어려 있음을 깨우쳐주는 시이다. 가벼움에 들떠있는 세간의 시편들에 나조차 달떠 있다가, 이 시를 읽는 순간 다시 한번 시가 가져야 할 위의와 진정성에 퍼뜩 정신이 든다.
종점이란 말이 “이곳으로 오는 모든 길 위에/ 제 몸을 다 비우고 마침내 본산本山에 이르는/순례의 다른 말”이라니! 종점, 그 끝에 다다라 종교적 신성을 찾기 위한 삶은 얼마나 핍진한 몸부림이어야 하는가?
“몸 수그리며 밥 먹는 일은/길나서는 세상 모든 허물어진 것들에게/뼈마디처럼 단단한 마음을 다해/간절한/아주 간-절한 경배를 올리는 일”이라니! 밥 먹는 일이 종교의 제의적 의미 영역 속에 있었음을 환기한다. “밥이 하늘”이라 했던 80년대적 아포리즘이 신성한 ‘경배’로 다시 의미화 되는 걸 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허름한 인생들이 이르는 허름한 종점이라서 그 종점은, 그 허름한 식사는 진정성을 얻는다. 얼마나 많은 풍찬노숙 끝에 이르렀으면 밥 한 끼가 이렇듯 종교의식과 같이 경건할 것인가? 얼마나 무너져봤으면 “세상 모든 허물어진 것들에게” 간절한 경배를 올리겠는가?
지금 시인이 쓰는 이 시 한 편도 마치 종점에 이르러 먹는 한 끼 밥과 같은 것이리라. 그러해야 하리라.
- 복효근 시인
우리詩 2010년 7월호
Isao sasaki /Sky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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