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나호열
방법은 세 가지다
가고 없는 사람 앞에 서성이듯
스스로 그 벽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예 그사람 잊어버리듯
벽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벽을 뚫고 벽을 넘어서거나
그러나 오늘도 나는
내 앞에 버티고 선 우람한 벽을
밀어보려고 한다
사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사실은 벽 때문에 조금식 뒤로 밀리고 있을 뿐인데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라고
한 줄이면 다 끝나버릴 텐데
누구나 한 번은 그 자리에 무너져서 땅 밑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절망에 휩싸일 때가 있다. 절벽 위에 서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핸들을 꺾어 침범해서는 안될 금지의 노란 선을 건너가야할 것 같은 유혹......나는 배웠다.'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는 없다'고, 단지 무엇무엇으로부터의 제한된 자유만이 허용될 뿐 이라고....
그러므로 나는 용케도 절망의 유혹으로부터 빚어진 죽음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진 기계적인 사고방식과 무한한 욕망의 사슬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절망을 안고 뒹굴며 절망과 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함부로 절망을 입에 올려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희망을 떠벌려서는 더욱 더 안되리라.
"절망, 너에게 쓰는 편지" 부분 / 나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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