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24. 1. 21. 14:11


겨울, 카르멘

   서경온



검은 옷을 걸쳐도
흰 꽃을 던져도
타오르는 불
카르멘은 빨강이다

치렁치렁한 머리칼
쓸어 올리며
겹겹이 리플 달린
치마폭 사이
종아리에서 허벅지까지
드러날 듯 말 듯
숨결 가빠지는
하바네라의 춤

조심하라는 말
거꾸로 주문이 되어
막다른 골목에서
칼을 맞고 쓰러질 때까지
오늘도 사윌 줄 모르는
너와 나의 이야기

잡았다고 생각하면
달아나는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새라고
카르멘은 노래한다

겨울 찬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본
배반의 불꽃놀이 한바탕
빗금 치는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핏빛
아름다웠다.


             —계간 《문학청춘》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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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온 / 1956년 충북 제천 출생. 198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하늘의 물감』 『흰 꽃도 푸르다』 『당신이 없을 때의 당신』 등.


출처 ㅡ푸른시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