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22. 11. 24. 16:53

서망西望

   조용미



저녁나절 해무가 끼었다 밤 깊어가며 안개는 마녘에서 노녘으로, 밀려가듯 바삐 또 서서히 움직였다

차갑고 아릿하고 괴이한 냄새가 났다 습습한 바람은 아니었다

마파람이 지날 때면 은은한 종소리가 난다는 종성바위는 어디 있을까 동석산 가파른 바위 아래 천종사에서 천 개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 환청이 일었다

섬의 모든 소리는 안개를 따라 흐르고 파묻혔다

안개를 헤치고 다시 왔다 여러 개의 둥근 종 같은 암릉에 매혹되어 절벽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산 아래 들판과 저수지도 귀 기울이는데

여기서라면 종소리 같은 울음을 토해내어도 괜찮을까

천종사는 소리를 감추었고 석적막산에는 적막이 돌처럼 쌓여 있다 이 섬에서는 모든 지명을 하나하나 음미해보게 된다 곡섬, 솔섬, 서망, 팽목구미, 슬도, 맹골도……

서쪽에서 서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곳

커다란 날개를 가진 학이 노을 속으로 멀리멀리 찰나는 날고 있는 가학리에서 나도 그 아름다운 붉은빛에 눈이 멀어 훌쩍 뛰어들었는데

서쪽은 닿을 수 없는 곳

학도 사람도 돌아올 수 없는 곳 안개조차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는 곳 먼 서쪽에서 들려오는 천 개의 종소리를 나는 듣는다


               —월간 《現代文學》 2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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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당신의 아름다움』.


출처 / 푸른 시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