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9. 8. 11. 17:03



속초

 

   신용목

 

 

 

음악을 물에 담그면 물고기 같을까? 이 방이 물에 잠겨 있다면 가스불은 산호초 같겠지. 무수한 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무수한 인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푸른 침묵.

 

바다.

 

돌아와

동전과 담배와 해변을 꺼내놓은 그가

 

꽁꽁 얼어붙은 냉장고를 북극으로 가리키며

이건 만년 전의 어항이야. 흰 서리 낀 얼음 한 알을 입속에 넣어준다.

 

어떤 음악은 멈춰 있다.

물수제비처럼 하늘을 지나가는 새들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펼치면 물살을 가진 책.

자갈을 삶은 날의 공기.

 

검은 스피커처럼 물속은 켜져 있다.

올려다보면, 여태 물수제비 파장으로 스러지는 해가 남은 말로 흔드는 수면. 저 문을

 

열 수 있을까?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하필이면 빨갛게 생선찌개를 끓였다. 노을이 아름다운 날. 노을 속에서 조용히 녹고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바다를. 호수를. 수돗가 세숫대야에 물고기처럼 일렁이던 저녁을. 아버지가 누이를 업고 달려갈 때 발에 차이던 세숫대야

흙바닥에 엎질러지던 밤을.

 

이제 본다.

 

그가 모든 이야기를 하나하나 얼굴로 가져가서는

문득,

밤은 누군가 바다의 문을 열어젖힌 시간이라는 것.

둘러앉아 밤을 먹다가

문 너머 서서히 어두워지는 골목까지 걸어온 심해를 찬바람으로 맞이하는 시간이라는 것.

말할 때,

 

밤을 동굴로 만드는 불빛 너머

거기 있다.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물고기를 늘어놓은 빨랫줄. 끝나지 않는 수평선.

왜 맨발이야? 달려가면 점점 더 멀어져서 끝내 걷을 수 없는 푸른 천.

 

 

 

              ⸺계간 포지션2019년 여름호

------------

신용목 /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작가세계신인상으로 시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