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 시집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한영수 시집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파란시선, 2018. 08. 20
시인의 말
누군가 웃어 정오였다
소소했으므로 계속 기억했다
기억 하니하나가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칠월에 폭설이었다
ㆍ
ㆍ
방
눈송이에 방을 들였지
떠오르고
떠오르다 잠이 들었네
구석으로 구석을
업고 업힌 방
철없이 겨울이 내렸어
방은 어디에 있나
구름의 눈동자에 묻어난다
반달이 반을 읽고
새가 돌아본다
깊은 오후
깊은 숨이 숨는 방
수소폭탄 서른 개의 폭발 에너지를 가진 손이
하나로는 만들 수 없는 눈송이
눈송이에 방을 들였네
새끼손톱만 했네
주춧돌은 없었지
손톱으로 긁어 파낸 바닥은 있었지
일 년에 두 번 정도 울어도 좋은 방
바람은 계산하지 말자
손을 모았지
눈송이, 세계를 떠다닌다
봄 가지 어디에도 주저앉지 않고
어둠상자
조용을 다해 흔들어 본다
모서리에 귀를 대 본다
어둠은 이미
무엇이고
이마 위에 얹혀 있다
돌아눕다가
하품을 하다가, 와락
기침이 터져 나올 때도
만지작거린다
몇 개의 명사와 형용사, 동사가 지나간다
사실은, 지나가게 둔다
어둠의 눈동자에 머물러 있다
안에 안이 있다
안의 안이 또 있는
옆얼굴이 셋
목소리도 일곱 꿈틀거린다
분수
너를 바라볼 수 있게 가슴을 두고
꽃이 열리듯
발을 들어 올린다 허리 높이로
어깨 높이로 머리 위로
너를 부르는
최초의 높이로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네가 있는 쪽으로
정점을 향해 가던 분수는 순간,
정지한다 온몸을 움직여
저를 저버린다
가지 않는 것 또한
가고 있는 것
비는 모를 거다
내리기만 하지
빗방울은 모를 거다
꼭 쥔 주먹은 매달릴 줄만 알지
그 하루 눈을 뜨고
솟구치며 쏟아져 내리는
눈물
완성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중간
저를 독재하는 짐승의 포효
은하를 그린다
제때에 얼굴을 돌리는 것
분수는 아는 거다
한영수
전라북도 남원에서 출생했다.
2010년 <서정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케냐의 장미> <꽃의 좌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