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어떻게 적막을 만질까 / 고재종
丹野
2017. 12. 9. 17:35
어떻게 적막을 만질까
고재종
해 지고 일순, 서산 능선이 선명해지는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적막 속에선
무슨 신신한 기미라도 새어나온다고 말할까
저만큼 숲에서는 누군가 두런거려서
가만히 돌아보면 딱 숨을 죽이고,
어둑발 함께 빛나는 개밥바라기를 보면
늦어버린 교신을 서둘러야 할 것도 같다
이때쯤 어머니는 사립짝에서 나를 길게 불렀지
뒤란 대숲에서 튀는 별들의 음향은
실로폰 소리처럼 점점 위로 들리기도 했었지
황혼을 지피다 미처 깃에 들지 못한 새처럼
서둘러 가야 할 집이 없어 나앉은 강둑,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어느 선현의 말처럼
강물은 물비늘도 없이 흐르는데
강둑의 달맞이꽃은 또 일제히 고개를 들고
산 능선은 이미 지워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때쯤 나는 뉘우침도 자랑도 없이
저 꽃밭에서 첫사랑의 입술에 닿자 불끈
장군봉으로 일어서던 세계의 긴장이 생각날 뿐
어떠한 공부로 적막의 幽玄을 만질까,
다만 스치는 저녁바람에 묻고 또 묻는 것이다
-계간『실천문학』2017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