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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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김경성 시집 / 시인동네시인선 074 / 문학의 전당(2017.04.05)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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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김경성
스무엿새 동안 살았던 집의 벽과 천장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길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뜨거움 같은 것이었다
별들이 돌아눕는 새벽이면 그늘 떨구는 종려나무도 긴 이파리로 길을 풀어내며
어둠에 묻혀 있던 것들을 하나씩 불러냈다
여러 갈래의 길이 몸을 풀 때마다 숲에서는 새들이 날아올랐다
작은 방에서 퍼져 나오는 수많은 길 중의 하나를 움켜쥔 채
중신에서 벗어난 길을 이야기하는 당신의 어깨가 붉다
길 끝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걷고 또 걸었던가
수없이 많은 물의 집이 세워졌다가 스러졌다
내 안에 들어온 것은 시든 꽃뿐이었는가
젖무덤을 파고 잘 여문 꽃씨를 꺼내 든다
황홀경의 우물을 빠져나올 때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지금 붉다
어미 새는 제 깃털을 뽑아서 조롱 속에 방을 들였다
둥근 방을 빠져나와서
길의 파편 위에 모로 누워 있는 어린 새,
꿈틀꿈틀
꿈 튼다
해국
김경성
부리가 둥글어서 한 호흡만으로도 바람을 다 들이킨다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해국
수평선의 소실점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은 향기뿐이라고
부리 속에 향 주머니를 넣어 두었다
후우우?
곡예사처럼 바람의 줄을 잡고 절벽을 오르는 향긋한 숨
둥근 부리를 열어 보이는 일이
하늘 높이 나는 것보다 더 농밀하다
날지 못하는 바닷새, 상강 무렵
바다를 향해 연보랏빛 부리를 활짝 열었다
향기가 하늘까지 해조음으로 번졌다
바다가 새보다 먼저 젖었다
유목의 시간
김경성
떠나는 것들은 그 사연조차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비가 긋고 가는 길을 따라 흘러갈 뿐
어제는 비가 와서 꽃이 피었고, 꽃을 먹은 양떼는 넘치도록 젖을 내어주었다
문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몸속에서 키우는 숲속 나무가 잎을 편다
해와 달이 둥근 창으로 드나드는 사이
초경을 건넌 처녀는 제 몸속에 아이를 들이고
건너고 또 건너서 닿은 구릉 너머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던 청년이 입안에 고인 침으로
새들을 키운다
높이 나는 새가 먼 곳에서 부는 마른 바람의 서걱거림까지 그대로
청년의 입속에 넣어준다
사막에서 집들은 고래가 되어 엎드려있다
고래 뱃속에서 자라는 나무가 한꺼번에 몸을 포개어 지느러미를 흔들어댈 때
고비 사막에서는 물 흐르듯 몇 마리의 고래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목의 시간은 그렇게 게르에서 시작해서 게르에서 익어간다
풀등
김경성
기억의 집은 견고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축대 밑이 온통 암벽이다
창호지 문에 구멍을 내고 방안을 들여다본다
자글거리는 생각들과 빛바랜 사진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시간을 잊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기억의 집을 찾아서 하루에 두 번씩 오는 고래가 있다
대이작도 큰 풀 안 언덕에 앉아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 고래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들썩 꼬리를 흔들 때면
새들은 고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물길에 발목을 묻고
수만 장의 사진을 연대기별로 정리한다
먼 바다까지 끌고 나가서
부서지도록 던져 놓아도 다시 제 속으로 들어와 새살이 돋게 하는
기억들과 손끝에서 왈칵 꽃이 피게 하는
달큰한 추억의 시간,
어느 것 하나 내 것 아닌 것이 없다
밤새도록 쏟아 붓던 비 그치고
바다의 주름치마를 들치고 누워있는 고래를 만난다
먼 바다까지 나갔다가 돌아와 숨을 고르며
기억의 길을 풀어내는지 향긋한 눈물이 흐른다
고래의 배에 얼굴을 묻는다
무언가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고래 위에 눕는다
바다 위에 별이 가득하다, 별자리를 찾아서
옆으로 옆으로 굴러간다, 뭉클하게
꼬리지느러미에 걸린다
해인사 장경판
김경성
오래된 숲을 들여다 본다
행과 연을 맞추어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두 숲의 중심이 되는
햇빛은 사라지고 오직 그림자와 바람만이 가득한 숲
그림자 가득 머금은 채
제 몸을 훑고 가는 바람의 탯줄을 붙잡고 서 있어야만 하는,
관절 마디마디에 짜디짠 바닷물 들여놓고
나이테를 가르며 달려드는 날카로운 칼날에
온몸을 던져서 제 몸에 경전을 돋을새김했던 기억으로
달이 뜨는 밤이면 목신木神의 춤이 시작된다
제 안에 모두 들일 수 있다고
완강하게 서 있는 눈물 출렁이는 숲,
달빛 휘감으며 내려놓는 말씀은 늘 깊다
나무의, 숲의
몸을 끌어안고 제 마음의 심지를 새기면서
옹이까지도 모두 사랑하리라 어루만지던 그 사람의 온기가
나무의 몸속에 들어 있는 듯
천년이 흘러도 마음 그대로이다
그늘 한 자락 끌어다 덮고 말씀에 젖는다
주석이 필요한 사랑도
더는 내려설 곳 없는 절망도
숲에 들어서면 그대로 위안이 되는
지상에서 가장 은밀한 숲,
묵향 가득한 경전 지상의 숲에 펼치고 있다
그대 숨결 같은 바람 세상에 가득하다
추전역
김경성
꼬리지느러미 오른편에 앉았다
한 번씩 몸을 비틀 때마다
오른쪽으로 기울여지는 아가미 속으로
산길 꾸러미가 흘러들어 갔다 검은,
길은 등지느러미를 따라 흘러가고 물박달나무는 제 몸의 비늘을 벗겨서
속 길을 그렸다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연필심이 제 몸의 뼈대가 된
추전역, 이따금 밑줄 긋고 가는 물고기가 없다면
문장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4B연필로 그어놓은 산길 위에 산란하는 물고기 떼,
배지느러미에 말간 알을 가득 안고 바다 쪽으로 흘러갔다
당신의 옆줄*에 기대어서 내 생도 저물어간다
*물고기의 옆줄(측선)은 물의 온도, 흐름, 수압, 진동을 감지한다.
겨울시편
김경성
한겨울 날아드는 철새 떼는
전깃줄부터 팽팽하게 맞춘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음 열고 있는 전깃줄을
오동나무 공명판에 걸어 놓고
바람으로 연주를 한다
산조 가야금 소리 들판을 가로질러 갈 때
저수지의 물결마저 일시 정지하여
제 몸 위에 얼음판을 올려놓고
새들의 그림자까지 다 받아낸다
춤을 추는 산사나무,
붉은 열매 후드득 떨어트려서 음표를 그려대고
저수지 큰 북을 두드리는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대숲에서는 마라카스* 소리가 비바체로 흘러나온다
*통 속의 재료를 흔들어서 음을 내는 악기
천마리 새떼가 날아올랐다
김경성
1
천 마리의 새떼
떡잎 펴고 발돋움하는 유채 밭에서
검은 흙에 부리를 넣었다가 꺼내며
밭의 숨구멍을 열어주고 있었다
어떤 씨앗은 새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서 몸을 숨기고
미처 꺼내지 못한 씨앗은 뿌리를 내리는지
돌멩이도 비켜 있었다
천 마리의 새떼가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새들이 허공에 날개를 넣고 부벼댈 때
깃털 사이로 빠져나가는, 혹은 깃털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소리
슈사사사삭 슈스사쓰스 수사스스스
지상의 겨드랑이를 타고 흘러가는 바람의 소리가 저러할까
새들의 몸을 빠져나온 바람이 결을 이루며
유채 떡잎에 부딪혀서 기우뚱거릴 때
나는 가야 할 길을 잊어버린 채
새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새의 날개에 손을 얹지 못하고
전깃줄에 앉은 새들의 그림자를 밟고 서서
펴지지 않는 날개만 자꾸 만지작거렸다
2
언덕까지 날아갔다가 되돌아온 새들이
밭의 이마와 가슴에 새싹 같은 부리로 입을 맞추며
해국꽃이 피었다고 꼬리를 까딱거리더니
날개로 만든 그물을 펼치며 바다 쪽으로 날아갔다
내 안에서 살포시 머리를 내미는 씨앗 한 톨,
어느 틈에 온몸을 휘감더니 비로소 새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몸을 튼다
사막의 가슴은 깊다
김경성
장맛비, 함석지붕 뚫을 기세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움푹한 구덩이를 만들어놓았다
몇만 년이 흐르면
저 웅덩이도 사막이 되어서 빗방울 화석을 남겨놓을 것이다
마두금 소리에 길들어진 사막의 바람은 부드러운 칼날을 가져서
제 몸을 모래 속에 집어넣고 쓰으윽 갈고 다닌다
잃어버린 바다는 멀리 있고
바다가 남겨놓은 상처의 딱지가 가끔 보이기도 한다
전갈들은 상처의 틈새로 들어가서 마른 물 자국을 핥으며
종이 등불 같은 달빛 사각사각 잘라내어
모래 틈에 끼워놓는다
낙타가 걸어온 길의 흔적은
가시덤불로 구워내는 짜파티의 어룽진 무늬 속에 들어 있다
낙타의 마른 발자국 적실 수 있게
장맛비 모두 사막 쪽으로 밀어도
사막의 가슴은 적시지 못할 것이다
사막을 벗어나지 않은 바람,
물결무늬를 새기며 물의 길을 찾고 있다
목재미륵보살반가사유상
김경성
깊이 들이마셨던 숨 내려놓았다
그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시간을 잊고 기다려야 했다
땅 깊숙이 얼굴을 묻고 지상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는 말들을
하나하나 제 속에 들였다
물이 흘러가던 뿌리를 거두고 거꾸로 서서
받아들였던 숨을 아래쪽으로 내려주고 있다, 천 년 후에라도
몸에서 흐르는 말들이 그대로일 것이다
그늘 속에 깃을 치고 가는 바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몸속에 들어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고요히 손을 내미는 소목장,
몇 날을 어루만지고 또 만졌던가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 내니 끈적한 눈물이 흐른다
수없이 비워냈던 달이 차오르고 만조의 바다는 달빛으로 일렁였다
시간의 흔적이 낱낱이 기억되어있는,
한 그루 나무속에 들어앉아 있던 그 사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비치는 빛의 결에 출렁이는 바다의 무늬와 제 속에 경전을 들인 나무의 나이테가 보인다
나이테를 가만히 젖히고 바라보니
아,
고요함의 극치
갑사 철당간*
김경성
하루에 한 번씩 철당간 꼭대기에서 쉬었다가 가는
달의 모서리에 녹꽃이 피었다, 잎보다 꽃잎 먼저 피는 녹꽃
시간이 흐를수록 속으로 파고들면서 무르익는다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는
몸 끝에서 펄럭이던 당幢**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땅 위에서 어룽거리는 그림자를 꿈의 색깔로 덧칠해보기도 한다
대숲에서 이는 바람이 가끔 허리를 감싼다, 조금씩 떨어져 내리는 몸의 비늘이 쌓여서 미끄러지는 빛의 고랑이 일렁인다
땅속으로 스며든 빛이 달에서 피는 녹꽃처럼 소리의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그 꽃을 보려고 날마다 우물을 파는 사람이 있다 허리가 꺾이고 손톱이 빠지도록 삽질을 하며 뿌리를 찾는 일이 일생의 전부라고…
깊고 깊은 곳에서 펄럭이는 먼 기억의 시간을 써나가는 철당간 근처에서도 잠을 깨는 씨앗들 몽올몽올거리고
녹꽃을 파먹은 초승달은 다시 몸 불린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녹청빛 새싹들 막 숨 터 오르는 때, 두 손에 가득히 모이는 생멸의 흔적들, 깃발에 새겨서 철당간에 건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등뼈 꼿꼿한 저 그림자에서도
꽃물결이 일고
일고
* 절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 세우는 쇠기둥
**절에서 기도나 법회 때 내건 깃발
따뜻한 횡홀
김경성
어떤 나무는
절구통이 되고
또 다른 나무는 절구공이가 되어
서로 몸을 짓찧으며 살아간다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
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
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게 파이도록
서로의 몸속을 아프게 드나든다
뒤섞인 물결무늬 절구통 가득히 넘실대며
절구공이 타고 흐른다
늙은 집
김경성
슬픔도 오래 묵히면 붉은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가
달팽이관으로부터 시작된 실금이 문 쪽으로 흘러가더니
문턱에서 멈추었다
이내 싸르락 소리를 내며 뜨거운 물이 아래층 천장을 타고 흘러갔다
밤의 정적을 깨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 속에서 나온 뜨거운 숨도 순식간에 틈으로 스며들어서
벽을 타고 같이 내려갔다
먹구름으로 달빛을 찍어가며 비가 내릴 때
사라진 달빛을 찾아서 찰진 바람이 몇 차례나 뒤척이다가 갔다
한쪽 눈이 먼 형광등은 빛을 좇아 껌벅거리고
늙은 애자를 감고 있는 전깃줄에서는 퍼드득 불꽃이 일며
집의 안과 밖이 순식간에 요동쳤다
늙은 집이 하혈을 했다
제 속에 고여 있는 꽃물을 터트렸다
오래 익어서 검붉은, 그 꽃을 보여주려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미처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붉은 꽃물을 퍼내며
그 속에 가라앉은 것들을 손으로 읽고 눈에 들였다
비 내리는 밤,
참을 수 없었던 말을 읊조리며
늙은 집의 뱃구레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았다
적멸의 방
김경성
창문이 없는 방에 들었다
불쑥 들어오는 바람이
방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알몸으로 빠져나가며
문설주에 걸린 바람의 옷이 함께 흔들렸다
밤이면 작은 새들이 깃털을 다듬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방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배흘림기둥을 타고
끈적하게 빗물이 흘러내렸다
지붕의 갈비뼈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어서
온통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오래전에 높이 날았던 기억은 지워지고
비행 깃털마저 퇴화되어 더는 날지 못한다
두 발을 땅속에 묻고
날개를 활짝 펴서 둥근 집을 만들었다
개심사 심검당 오르는 길,
움집 같은 공작단풍의 방에 들어
바람의 옷을 입었다
비 쏟아지는 늦가을 아침이었다
나무 속으로 들어간 물고기
김경성
뱃가죽이 붉은 뱀 한 마리가 길바닥에 뒤집혀 있다. 한 번도 누워본 적 없다는 듯
기다란 몸이 물결처럼 길을 건너가는 사이
뱀의 등뼈가 부서지도록 누군가 밟고 지나갔다
길바닥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자국이 아니어도 순간이 빚어낸 참혹한 스침이다
몸을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물푸레나무도 제 몸을 둥그렇게 구부려서 돌담에 기대고 있는 화장암華藏庵,
죽은 뱀을 뛰어넘어서 찾아갔으나
스님은 없고
풍경소리만이 절마당을 돌아 나와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월의 작약은 제 향기를 이겨내지 못한 채 이끼꽃 핀 담장에 꽃잎을 털어내고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빛이 바랜 빗살문의 그림자가
먹물을 엎지른 듯 번진다
말 없음으로 텅 빈 하늘과 텅 빈 암자를 가득히 채워가는,
달 속에 있는 듯
점점 부풀어 오르는 달 안을 거니는 듯
고요의 담장을 두르고 높은 곳에 떠 있는
적막하고 쓸쓸한 암자
* 경상북도 문경시 운달산 중턱에 자리한 김룡사의 산내 암자
깨진 거울도 거울이라 부른다
김경성
교동도 대룡마을 빈집 담장 아래
돋움별 떨어졌던 자리가 깊다
마당가에 피어난 맨드라미 핏빛 물 뚝뚝 떨어진다
깨진 거울이 이끼 낀 담벼락에 버려진 채
직립에 머물렀던 시간을 해체하는 중이다
거울이 깨지기 전에 들어가 있었던 한 사람이 문을 열어준다
날카로운 모서리에 풍경이 들어간다
상처 난 가슴에 들이는 것들은 모두 무엇이 될까
거울 속을 드나들던 것들은 말이 없다
깨진 풍경을 들고 사라져버린 거울의 파편은
오래전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낙관이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골목 안까지 흘렀던 때,
전파상에서는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소리가
찌륵 찌륵 새울음처럼 흘러나왔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숨이다
닫혀 있는 시계방의 벽시계가 모두 멈추어있다
이제 태엽을 감아야 한다
저녁을 여는 시계추 깊게 흔들린다
한 무리의 새떼가 저녁하늘에 해서체를 쓰며 날아간다
겹쳐진 저 문장은 그 저녁에 지나갔던 새떼가 써놓았던 고서古書이다
낙관에 묻어있었던 붉은 인주가 맨드라미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깨진 거울의 모서리를 맞추는지
거울 속의 문고리가 따스하다
똬리를 틀었던 몸을 푼다
숯
김경성
동박새 부리에 칼을 꽂아서
동백꽃의 심장을 핥으면
온몸을 던져
바닥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나지
그 후로 오랫동안
슬픔의 두께를 마음의 자로 재면서
바람의 부리에 칼날을 물려주는
동백꽃보다 더 붉은
참나무의 심장을 들여다본 적 있다네
불구덩이에서 붉은 꽃 절정일 때
제 눈에 흙을 덮어
눈이 멀게 하지
제 안에 불꽃을 숨기고
온통 그림자만이 가득한
참나무 검은 꽃
소멸에 관한 몇 가지 기록
김경성
검정 꼬리 깃털이 유난히 길었던 수탉이 있었다
깃털이란 깃털을 모두 세우고 눈을 치켜뜨며 달려들어도
흙담 아래 앉아서 봉숭아꽃을 찧었다
칸나처럼, 혀에 돌기가 선 것처럼 붉은 닭벼슬만 보였었다
밥물이 흘러내려서 부뚜막을 적시고 밥 냄새를 맡고 사는 부지깽이는 싹이 돋으려는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생솔가지 아궁이에 밀어 넣으면 송진 냄새가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오래된 팽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제 그늘을 바라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고, 밤이면 은하수를 타고 내려온 별들이 생나무에 알을 슬어놓았다, 늦가을 팽나무에 올라가면 가지마다 노랗게 익은 별의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별을 먹었을까,
시침질 끝내지 못한 별들이 뱃속에서 싸그락거렸다
칸나꽃 목 꺾는 여름이었다, 흙담을 돌아나갈 때
뜨겁게 흘러내리는
첫, 몸이 열리는
수탉의 벼슬 같은 칸나 꽃잎이 다리를 타고 떨어졌다, 흘러내렸다
내가 삼켰던 별자리가 마당에 그려져 있었다 밤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서 은하수를 타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 첫, 몸을 열고 나온
별의 눈
울음의 바깥
김경성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폭설에 무너졌다 생살이 찢기어지고 뼈마디가 툭툭 부러졌다
중심을 잡아주는 뿌리는 지층 속의 기운을 받아들였던 곳
우지끈 부러질 때, 울음의 파문은 바깥을 넘어가지 못하고
거북이 등 같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해마다 적어놓은 말들이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땅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한 생애 동안 떠받치고 있던 하늘을 내려놓고 묵언수행 중이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에 휘청거린다
내 몸은 이미 균형을 잡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사는 동안 내 안에 어떤 울음이 자라고 있어서
마음 바깥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날마다 출렁이기만 하는가
상처에 고여 있는 나무의 울음이 출렁이고
내 안에 자라는 울음의 나무는 숲이 되어서
심하게 흔들린다
녹슬지 않는 밤
김경성
방문이 내려앉았다
늙은 경첩을 물고 있는 못의 자리가 깊다
나무젓가락 분질러서 밀어 넣고 망치질을 했다
풀어진 문틀, 바람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틈으로 새 못을 밀어 넣었다
언젠가 다시 벌어질 틈을 위하여
나무문을 세우는 못은 나사못이어야 한다고
나무의 결을 하나하나 읽으며 천천히 들어가서
못의 방을 만들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들이치는 바람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나이테에 새겨진 시간을 물고 있는
나사못의 틈으로 들어가는 바람이여
나무의 틈을 드나드는 그대여
틈과 틈 사이에 함께 정박해 있었구나
젖은 마음을 읽으며
나이테의 행간 속에 드는 못의 잠은 깊다
그대 가슴 안에 파놓은 못[池] 속에 드는 잠도 깊다
너무 깊어서 녹슬지 않는 잠이다
허공의 무덤
김경성
수련 꽃 다 진 연못이 적막하다
이따금 들여다보고 가는 새들이 아니었다면
원시의 늪일 것 같은 저곳은
뻘 속에 뿌리를 내려서
식물들이 처음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중생대의 시간을 끌어내어
울컥울컥 꽃이 피어나게 하는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빛의 칼날이 고요를 가르며
제 자리인 양 연못 가득히 들어가 있다
허공은 늘 무언가로 가득히 차 있다
스치는 바람마저 머물다가는 물속에
허공의 무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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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깨지지 않는
뜯어지지 않는 고요를 둘둘 말아서 입천장에 붙이고
혀로 꾹 눌러놓는다
마음은 시침처럼 느리게
몸은 분침처럼 조금 빠르게
2017년 3월
김 경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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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성 詩集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 해설 ] -
수련이 지고 난 뒤, 마침내 찾아온 '황홀'
박 성 현 / 시인
‘수련’, 그 은밀한 매혹의 시작
가까이, 손이 닿을 듯한 거리에 수련이 있다.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짙은 어둠을 끌어올리는데, 수련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빛과 주변의 온갖 소리들을 흡수하면서 허공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연다. 그리고 수련은 해독되지 않은 고대의 문자처럼 내면으로 침잠한 채 우리를 바라본다. 회화적이며 음악적이고 때로는 암시와 상징으로 가득 찬 수련이 있고, 또한 세계를 압축하듯 피어 있는 수련이 있다.
그런데 ‘수련이 있다’라는 이 사태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련이 피고 지기까지의 그 경이로움에 대해 우리의 언어는 과연 충분히 형용할 수 있을까. 이성복 시인이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라 부른, 이 자명한 불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그 어떤 문장으로도 확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는 언어를 질료로 한다는 1차적 사실로 인해 시인은 그 숙명적 좌절에 직면해야만 한다. 요컨대, 수련이 피고 지기까지의 시간들과 ‘피어-있음’에 수반되는 모든 가능성과 비밀들의 언어적 형상은 비록 ‘실패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마주치고 극복해야만 하는 필연적 고통이라는 것.
다시 수련이 여기에 있다.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하고 필연적인 형상이다. 넓고 두툼한 이파리에서 긴 꽃대가 뻗어 나오고 꽃봉오리가 맺히며 순간의 힘으로 꽃잎을 열 때도, 수련은 자신의 인상과 몸짓, 영혼을 조금씩 밀어내며 우리가 ‘수련’이라 부르는 것을 온전히 표현한다. “빗방울 소리에 밤새 뒤척거리던 수련이 몸 여는 시간”조차 “물큰한 향기 내뿜는 매실의 사리가 나무 아래 그득”한 황홀이다.(「연곡사 동부도」). 만지면 사라질 듯 부드러우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을 바꾼다. 습지에 햇살이 가득하면 투명하다 못해 분홍빛이 감돌고,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머리를 휘어감은 빛을 한꺼번에 풀어버리기도 한다. 물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밤의 침묵과 고립, 냉소조차도 수련이다.
이처럼 수련이 가진 모든 육체의 결들은 바로 수련의 ‘표현’이다. 그리고 시인만이 그 ‘표현’을 ‘언어-그림’으로서 농밀하게 그려낼 수 있다. 수련은 시인을 향하고, 시인은 귀를 열어 수련의 말을 듣는다. 다시 말하자. 시인과 수련의 운명적 만남, 혹은 필연적 관계 맺기라 부를 수 있는 이 사태가 ‘표현’이란 단어의 직접적 의미로써, ‘세계’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새롭게 나타난다. ‘시인’이란, 수련의 향취와 색깔, 그리고 옅은 안개에도 기울어지는 꽃잎의 한없이 가벼운 무게와 바람이 비켜간 자리에 남은 미세한 기울기를 보면서 끊임없이 그 언어적 가능성을 타진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닌가. 이른바 은밀한 매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세계의 내적 표현 혹은 ‘발자국’이 만들어낸 상형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시인에게 다가오는가. 다시 말해, 세계는 시인의 사유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시인의 삶을 이끌어 가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직 시인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며, 또한 그가 살아가는 생생한 현재 속에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련을 표현하는 것은 ‘나’와 ‘수련’의 현재적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세계내의 주체와 타자들이 가질 수 있는 (혹은 가져야만 하는) 삶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단독의 개별 세계’에서, 무수한 개체들이 뒤섞이고 스며들며 서로 상관하는 ‘관계적이고 총체적인 세계’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비롭고 충만한 언어의 소유자다. 이를테면, “부리가 둥글어서 한 호흡만으로도 바람을 다 들이킨다//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해국/수평선의 소실점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은 향기뿐이라고/부리 속에 향 주머니를 넣어두었다”(「해국」)라며 ‘해국’을 ‘날개가 없는 새’로 환치해 꽃이 필연적으로 짙은 향기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거나, “붉은 눈을 먹은 새들이 부리를 씻는 것을 보았다//나뭇가지를 태우며 솟아오르는 태양의 중심을 향하여 날아가는 직박구리의 몸이 물들면서 팥배나무의 눈이 새의 몸속으로 들어갔다”(「팥배나무」)라며 ‘팥배나무 열매’와 ‘눈’을 등치해 생명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또한 “발아래로 흘러가는 나무와 길은 끝이 없는 길이어서 수만 번씩 제 몸의 비늘을 흔들어야 했다”(「나무 속으로 들어간 물고기」)라며 ‘나무’와 ‘물고기’의 실존이 다르지 않음을 묘파한다.
이것이 김경성 시인이 등단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한 시작詩作의 바탕이자 근본이며, 시인이 집약한 언어의 광휘들이다. 그는 무한히 펼쳐져 있는 사물들의 관계 속으로 스며들어, 그것의 오래된 습속을 단절시키고 균열을 낸다. 그가 마침내 엮어낸『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는 시인이 세계와 대면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감각의 실존이며 세계의 내적 표현이자 울음이고 통각이다.
어떤 나무는
절구통이 되고
또 다른 나무는 절구공이가 되어
서로 몸을 짓찧으면서 살아간다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
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
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게 파이도록
서로의 몸속을 아프게 드나든다
- 「따뜻한 황홀」부분
생활세계에서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낼 때가 많다. 우리가 대상을 ‘절구통’이나 ‘절구공이’로 부를 때는 그것의 사용과 기능을 염두에 둔 것이며,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름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을 분별하는 척도라는 것이다.‘-통’과 ‘-공이’라는 접미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는 담고, 다른 하나는 잘게 부수는 전혀 다른 사물을 본다. 그러나 시인은 특이하게도 ‘이름’에 함축된 공통의 척도를 읽는다. 그는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일까.
시인이 보는 것은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이 파이도록/서로의 몸속을 아프게 드나”드는 ‘나무’라는 한 몸이다. 그것이 비록 사용과 기능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부여받았고, 또한 다른 사물로 변용되었지만 애초에 그것들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절구통’과 ‘절구공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나무’와 ‘물고기’, ‘해국’과 ‘날개 없는 새’등 시인이 감각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 적용된다. “동박새의 부리에 칼을 꽂아서/동백꽃의 심장을 핥으면/온몸을 던져/바닥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나”(「숯」)는 생명의 맹렬한 순환같은.
여기서 시인은 더 강렬하고 더 깊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세계는 이미 만들어진 것의 총체가 아니라 만들어 져야 할 것들의 총체라는 자각도 함께 수반된다. 이 경험은 일종의 밀교密敎적 비의와도 같아서, 그는 “수많은 방을 들인 한쪽 가지가 흔들린다/흔들림은 수위가 있는 늪이다. 오래전 바람과 밀교를 하며/그 늪에 빠져본 적 있다/구름을 접어서 만든 허공의 계단을 올라가면/그곳에는 흔들리는 생이 있다/느릅나무가 내어주는 잎에 소라 속 같은 방을 만들고 알을 낳았다/나무는 제 몸속에서 끈적한 혀를 꺼내어 알을 감싸주고/산란의 시간은 눈부셨다”(「느릅나무 방」)고 고백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산통은 온전히 시인의 감각을 향한다. 셀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호하고 불가해한 세계에서 시인은 자신이 ‘세계’의 기획자이며, 동시에 세계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새들의 말과 책 속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저릿한 말들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오! 온몸 가득히 느껴지는 오르가즘
화라락 불붙듯이 한꺼번에 서고를 덮쳐는 해일
속수무책이다
-「오래된 서고」부분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새들의 말”이란 아무래도 새들이 자신의 온몸을 눌러 찍은 ‘발자국’일 것이다. 그 ‘발자국’은 각각의 새들이 축적한 경험의 함축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의지이자 언어다. 하늘로 솟구칠 때의 놀라운 비행력과 허공에 멈춰 있을 때의 부력도 내재한다. 가벼운 깃털 사이에 스며드는 부드러운 햇살과 스산한 바람, 그리고 새들의 시선에 스며든 원근도 있다. 새들의 발자국은 밤을 열고 닫으며 적극적인 부재를 산출한다. 의외로 새의 ‘발자국’은 중력에서 가장 먼 언어다. 찍히자마자 사라지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들은 모래사장에 내려앉아 새하얗게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순간 날아올라 허공을 찢는다. 이것이 시인이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새들의 말”에서 읽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책 속에서 흘러나온/말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발자국의 상형을 (인간의) 문자/언어로 등치하는 일종의 주술 같은 것인데, 그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 느끼고 받아들이는 ‘말’들은 아주 사소한 형태라 하더라도 ‘사물의 있음’이라는 놀라운 사태를 담아내고 있다. “내 안에서 살포시 머리를 내미는 씨앗 한 톨/어느 틈에 온몸을 휘감더니 비로소 새들이 날아가는 쪽으로 몸을 튼다”(「천 마리 새떼가 날아올랐다」)라는 문장에 나타난 것처럼 문자화된 ‘상형’이란 이미 또 하나의 ‘생명’(씨앗)이어서 ‘나’를 먹이로 삼고 스스로의 지향을 결정한다는 것. 그는 말들을 어루만짐으로써 세계를 기획하는 자로 도약한다.
이 사태를 깨닫는 순간, 시인의 손바닥에는 ‘저릿한 말들’이 스며들며 온몸을 관통하는 오르가즘을 만들어낸다. “화라락 불붙듯이 한꺼번에 서고를 덮치는 해일”로 다가오는 속수무책으로 감전되는 ‘말들’의 힘!
‘유목’의 지도를 걷다
김경성 시인은 언어의 촉수에 상당히 민감하다. 그의 반응속도는 대상의 나타남과 거의 동일한데, 대상의 이름을 통해 내면의 깊이를 가늠하며, 또한 그 이름들이 가진 ‘공통 척도’(랑시에르)를 통해 세계를 재구성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름들은 시적으로 촘촘하게 얽힌 대상의 본질은 물론 그것들의 상징적 관계와 현실적 나타남의 비가시적 충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매개로 작용하며, 세계를 개별의 집합체가 아닌 전체 혹은 내적 공동체로써 변용시킨다.
때문에 우리는 그의 문장을 ‘항상 주어진’ 세계 속에서 사물들을 (사물자체를 통해) 새롭게 발견해내는 직관이자, 사물들이 함축하는 모든 가능성들을 발현시킬 수 있는 내적 에너지로 말할 수 있다. 세계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비로소 태어나고 또한 의지와 표상을 가지며 자신의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간다는 것. “먼 바다까지 끌고 나가서/부서지도록 던져놓아도 다시 제 속으로 들어와 새살이 돋게 하는/기억들과 손끝에서 왈칵 꽃이 피게 하는/달큰한 추억의 시간/어느 것하나 내 것 아닌 것이 없다”(「풀등」)고 고백하는 시인의 손끝은 이미 세계를 과감하게 괄호 쳐버린 에포케, 곧 ‘방법적 회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는 이러한 통찰의 방법적 실편을 ‘유목’이라는 정착할 수 없음을 통해 만들어낸다.
시인에게 (세계를 향한) 괄호 치기는 ‘유목’과 동일하다. 그의 여정은 머나 먼 아프리카로부터 시작해 아시아와 한반도의 굽이를 돈다. “세렝게티의 밤은 밀림 속 롯지에/전기가 끊기는 밤 열두 시에 시작된다”로 시작하는「세렝게티의 말[言]」은 광활한 초원에서 경험한 법열法悅이고, “흰 옷 입고 빙하기를 건너온 당신/조금씩 제 몸을 녹여 써 나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젖은 말들/야크의 몸속에서 첫말이 되어 몽클거린다”(「야크의 눈물」)라는 백미의 문장은 종교적 신비까지 엿보인다. 특히「목기미해변에 닻을 내리다」와「섬진강의 봄」「해인사 장경판」「삼층석탑」「추전역」「노고단 가는 길」「비봉리 환목주丸木主」등은 그가 유목을 통해 발견한 한반도의 섬세한 내면이라 할 정도다. 그는 “더는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는 편자를 벗고/맨발로 달려가는 목마의 햇길이 수평을 긋고 있다”(「바다로 간 목마」)와 같이 스스로를 ‘유목하는 자’로 표상한다.
꼬리지느러미 오른편에 앉았다
한 번씩 몸을 비틀 때마다
오른쪽으로 기울여지는 아가미 속으로
산길 꾸러미가 흘러들어 갔다
검은 길은 등지느러미를 따라 흘러가고
물박달나무는 제 몸의 비늘을 벗겨서 속 깊을 그렸다
마치 다하지 못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연필심이 제 몸의 뼈대가 된 추전역
이따금 제 밑줄 긋고 가는 물고기가 없다면
문장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4B연필로 그어놓은 산길 위에 산란하는 물고기 떼
배지느러미에 말간 알을 가득 안고 바다 쪽으로 흘러 갔다
당신의 옆줄에 기대어서 내 생도 저물어간다
-「추전역」전문
시인은 추전杻田이라 불리는 강원도 태백시를 관통하는 오래된 역사驛舍를 향한다. 가방에는 니콘과 망원렌즈, 그리고 몇 개의 35㎜필름이 있다. 보는 것은 ‘눈’의 작용이라 할 수 없지만, 이 ‘눈’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가질 수 없다.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피사체에 닿는 ‘보는 자’의 숨결이고, 그 ‘숨결’이 흩어지며 피사체의 몸을 읽는 행위다. 그는 ‘추전’이란 이름의 유래를 읽고 ‘싸리밭골’의 뚜렷한 질감을 상상한다. 여전히 칼바람은 낮고 넓게 흩어져 있다.
‘추전’이란 이름은 싸리밭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해발 855m에 위치해 있다. 한여름에도 두터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다고 하니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표정에는 드문드문 얼음이 박혀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상영이 끝난 극장처럼 추전역이 숨죽여 있고 그는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은 무대를 바라본다. 셔터에 손이 닿자 시간은 정지한다.
결코 이어질 수 없는 두 개의 길이 산의 저편으로 뻗어 있다. 가끔 빛이 산란하면서 능선의 거친 곡선을 원만하게 만들지만, 그림은 요원하다. 그는 낡은 벤치에 앉아 깊은 숨을 들이키며 역사를 구석구석 살피는데, 이상하게도 물고기들이 지나다녔던 흔적이 보인다. 하루에 겨우 두 번 이곳을 지났던 통일호를 물고기로 치환해버린 것이다. “꼬리지느러미 오른편에 앉”는다. 등지느러미를 따라 흘러가는 ‘검은 길’(철로) 너머에 “제 몸의 비늘을 벗겨서 속 길을 그”리는 ‘물박달나무’가 촘촘히 박혀 있다. 기차가 오른쪽으로 굽이 돌 때마다 사람들이 기울어지고, 기울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몸을 비틀 때마다” 기차의 ‘아가미’속으로 길게 “산길 꾸러미가 흘러들어” 왔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그는 잠시 손을 멈추고 렌즈에 닿은 ‘피사체’의 온도를 살핀다. “이따금 밑줄 긋고 가는 물고기가 없다면” 추전역은 적막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이러한 사태를 “문장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추전역을 지나다녔던 수많은 ‘물고기떼’, 지금도 “배지느러미에 말간 알을 가득 안고 바다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가. 그렇게 “당신의 옆줄에 기대어서 내 생도 저물어”가고 있다.
그의 여행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삶의 지향을 새롭게 정립하는 (윤리적) 계기로 작용한다. 그가 추전역에서 마주친 것은 결국 ‘당신’을 향해 한없이 기울어지고 있는 자신의 생이자 “새가 날아갔던 길을 가로질러 산성에 올라섰다/움푹 팬 산성 길의 눈[眼]에/빗물이 고여 그렁거리고/무언가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는지/가슴 안쪽에도 붉은 길이 생겼다/새들의 길이 내 안으로 흐르고 있었다”(「새들의 길에는 횡단보도가 없다」)라는 사유의 이미지들이다.「등뼈를 어루만지며」도 마찬가지. 그는 “강이 구부러지는 소리”와 “물이 꺾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그토록 많은 사금파리”를 느끼고, “흐르지 않고/상처의 틈에 고이는 물이/몸 안에서 출렁”거리는 ‘파랑주의보’를 감지한다. “원통전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동백꽃은/웅진전의 덩굴무늬까지 물들어 놓았더라/고요 속에 몸과 마음을 넣으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무량한 고요의 깊이/내 몸에도 가득히 젖은 꽃이 피어나더라”라는「선암매仙巖梅」의 절창은 또 어떤가. 이런 의미에서 그의 생은 세계의 내면과 그 명경明鏡에 비쳐진 자신을 찾아가는 유목이며, 그것은 시인을 흔들어 깨우는 맑고 팽팽한 ‘마라카스 소리’와 같은 것이다.
한겨울 날아드는 철새 떼는
전깃줄부터 팽팽하게 맞춘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음 열고 있는 전깃줄을
오동나무 공명판에 걸어놓고
바람으로 연주한다
산조가야금 소리 들판을 가로질러갈 때
저수지의 물결마저 일시 정지하여
제 몸 위에 얼음판을 올려놓고
새들의 그림자까지 다 받아낸다
춤을 추는 산사나무
붉은 열매 후드득 떨어트려서 음표를 그려내고
저수지 큰 북을 두드리는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대숲에서는 마라카스 소리가 비바체로 흘러나온다
-「겨울 시편」전문
바람의 기척에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은 ‘대숲’이다. 수십 개의 현을 팽팽하게 당겨 조율을 마친 피아노처럼 대숲은 손가락의 기울기와 무게, 온도에 따라 미세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작고 단조로운 부저음을 만들 때도 있는데, 대숲이 뿌리부터 바람을 끌어올리는 소리다. 높고 소리는 대나무 전체가 가늘고 긴 이파리를 비비며 만들어내는 소리다. 다급하지 않고 멀리 간다. 대숲은 세계의 목소리를 가장 잘 담아낸 악기라 할 정도로 소리의 골이 깊다.
대숲만 그런가. 산의 모든 나무들은 이미 ‘마라카스’처럼 세계와 공명하는 ‘악기’다. 주변의 모든 사물과 어우러지며 그 움직임과 방향, 속도를 표현해내는데, 열매가 후드득 떨어지며 내는 소리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의 목청과 날갯짓, 바람이 흩뿌려놓은 저수지의 물결과 들판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기울어지는 풀의 바스락거림도 담고 있다. 여기서 시인이 주목한 나무는 오동과 산사다. 오동을 두고는 “산조가야금 소리 들판을 가로질러갈 때/저수지의 물결마저 일시 정지하여/제 몸 위에 얼음판을 올려놓고/새들의 그림자까지 다 받아낸다”라며 쓰며, 산사의 격정적인 흔들림에 대해서는 “춤을 추는 산사나무/붉은 열매 후드득 떨어트려서 음표를 그려대고/저수지 큰 북을 두드리는 새떼가/한꺼번에 날아오른다”로 묘파한다.
마지막에는 ‘대숲’을 등장시키는데, “대숲에서는 마라카스 소리가 비바체로 흘러나온다”라며, 나무들과 세계의 일체를 명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체감은 세계의 소리와 ‘나’와의 이어짐으로 확장된다. 다시 말하자. ‘나’는 대숲과 공명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세계와 하나가 된다. 그것은 “늙은 경첩을 물고 있는 못의 자리”와 같아 “너무 깊어서 녹슬지 앟는 잠”(「녹슬지 않는 잠」)이며, “불길이 지나간 그 속에는 스치기만 해도 전 생애가 흔들리는/간절한 기도”(「느티나무 룽다」)이기도 하다. 또한 “상처에 고여 있는 나무의 울음이 출렁이고/내 안에서 자라는 울음의 나무는 숲이 되어서/심하게 흔들린다”(「울음의 바깥」)는 교감이며 절대적 합일이다.
다시 천년 뒤에도 ‘수련’은 피고
시인의 유목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는 이 질문에 답을 하듯「삼층석탑」에서 “그리운 것들은 곡선으로 흘러간다. 강물 한 자락 끌어다가/둥글어진 몸돌과 내 몸을 칭칭 감고/천년의 한순간이 되어서/속삭인다/나 여기 있다고/오래 기다렸다고//천년 전 흐르던 여강이 천년을 향하여 흘러 흘러간다”고 쓴다. 이 문장이 암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천년을 향해 흘러가듯, 그이 유목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유목’은 인간이라는 유적 존재에서 각인된 본능이자 숙명이다. 비록 그가 “단지 예감할 뿐, 어디로/흘러가는지 나는 모르겠다/얼마나 오래 허공의 지문을 읽고 있었는지 한쪽 어깨가 저리다//알맞은 햇빛과 물과 바람 그리고 한 줌의 마음이면 괜찮다고 했지만, 움푹 팬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산당화 옆 느티나무」)면서 삶을 저어하고 있지만, 그것은 유목의 필연적 고통과 상처일 뿐이다.
특이한 것은, 그의 유목이 시간을 가역한다는 점이다. 그는 시간조차 유목한다. 그의 시편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사백 년 전의 꽃’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며, “유적같은 몸에 피어난 만첩홍매/벌들의 소리가 사백 년 고목의 검은 몸속으로 들어가네/몇천 번이나 뒤척거리며 꽃의 무늬를 새겼을까/지금 피어 있는 꽃은 백 년 전의 꽃이 아니고/이백 년 전의 꽃도 아니라네/그보다 더 오래 사백 년 전으로 들어가/몸부림치며 기다리던 꽃”(「길을 잃었네」)을 보며 천년이 여덟 번이나 흘러간 “구름의 환락”(「비봉리 환목주丸木舟」)을 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그는 ‘직립의 시간’을 해체하고 “긴 시간 동안 그늘 속에 깃을 치고 가는 바람”(「목제미륵보살반가사유상」)조차 읽어내기도 한다.
천년 후에도 수련은 피고, 시인은 그 꽃을 바라보며 “물큰한 향기 내뿜는 매실의 사리가 나무 아래 그득”(「연곡사 동부도」)한 황홀을 느낄 것이다.
수련꽃 다 진 연못이 적막하다
이따금 들여다보고 가는 새들이 아니었다면
원시의 늪일 것 같은 저곳은
식물들이 처음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중생대의 시간을 끌어내어
울컥울컥 꽃이 피어나게 하는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빛의 칼날이 고요를 가르며
제 자리인 양 연못 가득히 들어가 있다
허공은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스치는 바람마저 머물다 가는 물속에
허공의 무덤이 있다
-「허공의 무덤」전문
수련이 있다. 가까이, 손에 닿는 곳이다. 평생 연못을 떠나지 못했다. 다만, 이파리를 움켜쥔 햇빛의 무리와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바람을 느끼며 세계의 모든 말과 냄새와 흔적을 읽는다. 새들이 날아오는 방향에는 어김없이 구름의 상형이 있으며, 그 모양은 시간에 따라 다르다. 수련은 있고 꽃은 인간의 윤리와 미학과는 전혀 무관한 채 시인을 바라본다. 평생을 유목으로 살아온 시인에게 ‘수련의 있음’은 오히려 부재의 암시다. 그것은 언제나 부재와 함께 존재한다. “말 없음으로 텅 빈 하늘과 텅 빈 암자를 가득히 채워가는/달 속에 있는 듯/점점 부풀어 오르는 달 안을 거니는 듯/고요의 담장을 두르고 높은 곳에 떠 있는”(「화장암華藏菴」) 적막한 암자가 드러하듯, 수련도 “ 다 읽지 못한 앞 페이지의 문장”(「각」)처럼 ‘죽음’과 공존하는 것이다.
“수련꽃 다 진 연못”은 적막할 뿐이다. 하지만, 그 없음의 내력은 오히려 ‘원시의 늪’에 가까워 “식물들이 처음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중생대의 시간을 끌어내어/울컥울컥 꽃이 피어나게 하는/근원을 생각하게”만든다. 수련을 그 몇 만 년의 시간을 함축하며 다시 천 년 후에도 피고 지는 것이다.
그때 그는 ‘빛의 칼날’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고요를 가르는 ‘황홀’을 만난다. 삶은 죽음을 이끌고, 죽음은 다시 삶으로 피어오른다. 그것이 그가 유목을 통해 발견한 진실이다. “나를 지탱해주는 내 몸에서 가장 은밀한/엑스레이 사진으로도 보여줄 수 없는/모란꽃잎 두 장을 펼쳐놓은 집”(「내밀한 집」)처럼 은밀하지만,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허공’을 가르며 “실타래 같은 길을 문 새떼가 내게로 오고 있”(「먼 길」)는 것, “온몸이 물결에 함몰되어 심하게 흔들려본 적 있는 사람만이/그의 몸을 열고 내력을 꺼내볼 수 있”(「시위를 당기다」)겠지만, 삶이라는 “고비 사막에서는 물 흐르듯 몇 마리의 고래가 앞을 나아”(「유목의 시간」)간다. “견고한 체위의 우주 속에서 온전하게 알을 깨고 나온/깃털 푸른 새들이 나무 우듬지에 앉아 바람을 타고 있”(「견고한 체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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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접시꽃 씨방이 아날로그로 피어난다. 꽃이 피고 지는 사이에도 마음은 너울져 숲이 된다. 가끔 비 내리는 창문으로 눈물 번지듯 여울목이 흘렀다. 맞지 않는 문틀을 붙잡고 담쟁이가 생각 밖으로 팔을 뻗을 때 바람이 허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디로 흘러가야 하나, 기억의 회로는 처음과 끝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사이를 넘나들던 것들은 시간의 흔적으로 보여준 뿐이다. 허공의 지문을 읽어내는 겨울 눈더미처럼 한 그루 나무속에 깃들어 사는 생은 긍휼하다. 늙은 악기의 몸통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숲을 울린다. 나는 말문을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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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성 시인∥
∙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 2011년《미네르바》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시집으로『와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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