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7. 6. 20. 20:51







마르치


김경성

 

진보라색 보자기를 바닷가에 펼쳐놓았다, 오동꽃 늪이다

날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늙은 마사지사 마르치의 옷 빛깔도 진보라이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오동 꽃향기가 난다


야자나무 기다란 잎이 바다를 쓸어내리며 수평선을 끌어당겨도

그녀의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목뼈에서부터 등뼈를 하나하나 읽어가던 그녀의 숨이 산호초의 귓바퀴를 돌아서

내 귓속으로 들어온다

남서 계절풍이 부는 녹청 빛 바다가 순식간에 일렁이며

사선으로 꽂히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몸을 연다

 

바다를 넘어서는 파도가 한 움큼씩 무언가 내려놓고 간다

오래 생각을 굴려서 이제는 모서리가 없는 소라껍데기와

산호초의 잘린 귀도 길을 잃은 듯, 소리를 잃은 듯 진보랏빛 늪에 빠졌다

 

먼 곳으로 떠나와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지문이 지워진 그녀의 손바닥에 나의 지문을 얹혔다

순간 해조류의 푸른 말들이 마르치의 눈에 닿았다





-계간『애지』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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