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문정영 시집『그만큼』

丹野 2015. 1. 22. 14:52

 

 

 

그만큼

문정영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돌멩이 생김새만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누가 나를 순하다 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
후박나무 잎은 후박나무 잎만큼 젖고
양귀비 꽃은 양귀비 꽃만큼 젖어서 후생이 생겨난다.
여름비는 풍성하여 다 적실 것 같은데
누운 자리를 남긴다.
그것이 살아가는 자리이고
다시 살아도 꼭 그만큼은 빈다.
그 크기가 무덤보다 작아서 비에 젖어 파랗다.
더 크게 걸어도
더 많이 걸어도
꼭 그만큼이라는데
앞서 빠르게 걸어온 자리가
그대에게 먼저 젖는다.

  

 

점화(點話)

 

 

문정영

 

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손가락에 눈과 귀가 있다.

 

상대방 손가락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를 한다.

 

눈물 한 방울이 점자처럼 손등에 떨어지기도 한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화려함이 먼저라고 척추장애인 아내에게 배운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면 세상은 눈물방울보다 작다.

 

아내의 손끝에서 꽃향기와 별빛을 읽는 그는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는 불안과 고통에 이르는 것도 달팽이만큼 느리다.

 

일 년처럼 읽고 십 년처럼 느낀다.

 

문장이 단순해진 것은 느리게 가는 것들 적기 위해서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풀잎과 공기를 더듬어 쓰는 작가이다.

 

새벽의 연우(煙雨)가 막 깨어난 꽃잎을 감싸는 것처럼 손끝이 별빛에 가 닿는다고 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

 

 

 

 

 

아버지를 쓰다

문정영


아버지는 집 앞 강물로 쓰면 싱겁고
한낮의 햇빛으로 지우면 파랬다
이른 저녁이면 뜨거워진 공기가 은어들처럼 파닥거렸다
아버지는 조용히 흔들리는 물결을 2층 옥상에서 바라 보셨다
가문 날에 아버지를 부르면 독한 담배 냄새가 났다
어린 나는 아버지와 익숙해지지 못했다
아버지를 배워 아버지가 되었으나
그 사이 강가의 돌멩이들은 혼자 머무는 법을 익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얼굴이 검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아버지와 몸이 닿아도 아픈 곳이 먼저 닿았다
초봄에 붉은 저녁이 걸려 있던 오동나무를 잘라냈다
잘린 밑동에서 자라는 새잎처럼 나는 키가 커갔다
누군가를 가려줄 수 있도록 넓어지라고 하셨으나
마음은 금이 간 사기그릇처럼 소심했다
아버지는 거름을 준 텃밭의 단감나무였다
무언가를 더 줄 수 있다는 듯 주렁주렁 해를 매달았다
아버지를 쓰고 싶었으나 읽는 법을 알지 못했다

 

 

 

문책

문정영


기억은 이전의 나를 풀어내는 作業이나 반딧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나의 잘못에 관한 것들은 5월의 맞바람을 적을 정도다

바람은 소리는 있으나 발음을 가지지 못하여 부딪치는 것의 입술을 따라간다
한쪽으로 치우친 침묵을 닮아 있다

나에 대한 문책은 침묵이다
부딪치는 것과 눈 마주치지 않는다

침묵은 다년생 풀잎에서 봇물이 흘러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풀린다
그간 나를 꾸짖던 바람을 베어 물 안 가득 넣어 두었다
새 떼의 발끝에 끌려나온 파문은 혀에 대한 문책이다

하늘 가장자리에 말줄임표를 찍으며 낮새들이 날아간다

내가 너무 많은 기억을 쓰는 날 責問은 더욱 무겁다
침묵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혼자 참아 내는 것이다
그간 나의 아가리는 너무 컸다. 컴컴하다.

 

 

 

유품 정리인  

문정영


어느 죽음 앞에서 유품 정리인이 자꾸 헛손질을 한다
마당가에 심어 놓은 꽃이며 나무는 그 자리에서 백년을 꿈꾼다
쓸쓸하다는 것 다 까먹어 더는 쓸쓸한 것들 털어낼 수가 없다

꽃은 나무는 이삿짐이 없다
사는 곳이 천국이다
몸 비운 자리에서 다른 몸 일어나 눈 비빈다
고독사 자살 살인이라는 꽃잎은 없다
썩는 일이 신 벗는 일처럼 쉬워서 그들은 신의 이름을 사모하지 않는다

이번 이사는 한 생을 비우는 작업이다
그들이 준비하는 동안 한 사람의 생업은 생기를 잃는다
사는 동안 마지막 이삿짐은 싸놓지 못한다

나는 남길 것이 햇빛 바람 시어밖에 없다
어두워지면 그마저 사라지고, 비가 오면 쓸려나갈 소망 뿐이다

 

 

 

돈화문로 11나길

문정영


  종로3가에는 할머니 칼국수집 김 서린 유리창 같은 골목이 있다
  그 유리창에 봄이라 쓰면 골목 끝에서 능소화가 핀다
  수선집 박음질 소리에 처마들이 단단해진다
  낮은 창문의 하루를 안다면 새들의 저녁을 아는 일이다
  몇 벌의 나비를 걸어놓은 한복집에서는 옛날 이야기가 들려나오고
  봄꽃들이 옛날 무늬처럼 피어난다

  골목이 생긴 이후 새로모신점집보다 바람이 그 날의 점괘를 본다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평운(平運)이다
  우산 하나로도 눈비를 막을 수 있는 골목에서 헤어진 연인은 다시 그 길로 들어서면 하나가 된다
  돌아서거나 비켜갈 수 없어 길의 끝까지 가야 한다
  능소화주차장은 능소화가 져도 능소화주차장이다

  돈독(敦篤), 돈화(敦化) 도탑다는 의미가 구불구불 돌아 나오는 골목에서 지난겨울 가랑눈도 어떤 깊이를 가졌겠다
  누군가 불러 눈을 감으면 속눈썹 끝에 흰 발자국이 걸렸겠다.

   

 

 



문정영


  거울에 비친 등은 쓸쓸하다. 죽은 날벌레 같은 뾰루지 몇 개를 달
고 있다. 원형이 사라진 엉덩이와 뼈대가 보이는 척추를 따라 머리
칼은 오래된 이력처럼 적을 것이 없다. 내내 앞의 눈치에 뒤를 열어
두지 못한 사내의 모습이 거기 있다. 사랑은 앞에서 오는 것이라고,
뒤태를 소홀하게 대하더니 어느 하나 비추지 못한다. 귓속말처럼
등은 소소한 일을 처리하면서 많은 굴욕을 겪었다.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중심이 생겼다. 쉽게 붉히는 얼굴을 가진 앞은 결핍성을 감
추고 있다. 등은 스스로를 비추는 줄 모르고 비춘다. 등은 뒤돌아서
도 등이다.

 

 

고전  

문정영


  고전은 변하지 않는다.
  자음 모음은 두 개의 톱니바퀴, 행간에 빗소리 담아도 몇 개의 음절은 건너뛰지 않는다
  첫 문장을 연잎처럼 붙여 읽어도 입천장에 가 닿는 소리는 입천장에서 시작하고, 달콤하거나 차 디찬 느낌은 아직 달콤하고 차디차다
  어느 모국어로 읽어도 읽는 이의 고전이다

  고전은 변한다
  몇 번 소리 내어 읽으면 톱니바퀴 사이에서 흰 밀가루 같은 양식이 나온다
  종이와 글자를 한 몸처럼 넘겨도 의미는 몇 장 뒤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돌아와 새롭게 읽힌다
  책은 오래 읽어 행간이 사라질수록 고전이다

  이십년 된 책 속의 그녀는 늙지 않고, 책 속의 그는 떠나가도 지나간 사람은 아니다. 달콤하다고 밑줄 친 문장만 천천히 낡아간다

  어느 봄날에 버릴 책들 넘기다가 꽃잎을 본다
  꽃잎 넣어둔 마음은 꽃잎 따라 얇아져 있다

  가버린 사랑 지금 꺼내어 읽으면 고전(苦戰)이다.  


 

 

첫 펭귄  

문정영


한 무리 펭귄들이 차디찬 바다 앞에서 머뭇거린다
한 마리 펭귄이 뛰어든 다음 다른 펭귄들도 잇따라 그 뒤를 따른다
첫 펭귄은 한 마리 뿐이다
누군가 등을 떠밀어 바다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남극에 첫 깃발을 꽂은 아문센처럼 21C를 걷는 발자국은 어디서든 첫 펭귄이다

사랑을 내딛고 나면 거기가 처음이고, 이별은 내딛고 간 발자국 뒤따라가는 다른 첫 발자국이다
아프다고 혼자 짓는 눈물도 그 아픈 발자국에서는 처음이다
그래서 지나간 아픔보다 지금 아픔이 더 아프다

꽃들도 필 때를 아는 첫 꽃봉오리를 따라 일제히 몸을 열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첫 사람도 있다.


 


 

 

거짓비늘 증후군  


문정영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몰라 묻는다

  내가 한 말본에 내 좌뇌가 먼저 속고, 그 다음 네가 속고, 그리고 서로
속은 것도 모르고 오래 바라본다

  어떤 상이 비늘처럼 벗겨지고, 벗겨진 자리에 안개가 끼는 거짓비늘 증
후군 현상, 거짓이라는 접어에 속는다

  초록 넝쿨이 빛을 향해 서 있는 것은 광합성 때문이 아니다. 해는 뜨거
운 눈이 있고 넝쿨은 차가운 손이 있어 오래 붙잡아야 하나가 된다

  망막에 맺힌 것을 믿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에 빛이 들어 있다. 너무 뚜
렷하게 바라보지 말고 빛으로 눈을 빚어내라 한다. 그 후 눈앞이 캄캄해지
고 바라보지 않아도 나는 네가 거기 있음을 안다.

  눈이 침침해지고 바라본 기억을 믿는 것이 사랑이다


 

 

 

열흘나비

문정영


  너는 나비처럼 웃는다. 웃는 입가가 나비의 날개 같다. 열흘 쯤 웃다보면
어느 생에서 어느 생으로 가는 지 잊어버릴 것만 같다. 너를 반경으로 빙빙
도는 사랑처럼 나비는 날 수 있는 신성을 갖고 있다. 아무도 찾지 못할 산
속으로 날아가는 나비를 본 적이 있다. 죽음을 보이기 싫어하는 습관 때문
이다.

  너는 나비처럼 운다. 여름 끝자리에서 너는 열흘을 다 산 것이다. 나는 너
를 보기 위하여 산으로 가는데 가을이 먼저 오고 있다. 너에게 생은 채우지
못하여도 열흘, 훌쩍 넘겨도 열흘이다.

   한번 본 너를 붙잡기 위하여 나는 찰나에 산다. 종국에는 열망을 향해 날
다 산화하는 너를 나는 지금 쫓고 있다. 너를 잡을 수 있는 날이 열흘뿐이나
나는 그 시간 밖에 있다.



 

 

수곽(水廓)

문정영


나는 한때 물처럼 맑다고 생각했다.
물로 집 한 채 지었거나,
물의 집이라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그런 나를 비추자 물빛이 흐려졌다.
내가 지은 집은 지는 해로 지은 것이었다.
고인 물을 막은 것에 불과했다.
내가 흐르는 물자리였으면
새 몇 마리 새 자리를 놓았을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면
눈물로 지은 집 한 채가 생각났고,
눈물도 거짓으로 흘릴 때가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집이 모래집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깊다는 생각은 지우기로 했다.
물은 엎드려 흐르는 것인데
내가 지은 집은 굽이 높았다.


 

 

저녁江

문정영


당신의 울음 안에는 느린 소 한 마리 있어, 긴 강둑 건너가며
한해살이풀처럼 느린 시간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 내가 빠지면
나도 모르게 헤엄치지 못하는 아이처럼 허우적거리는데, 그곳을
한참 만에 빠져나오면 어릴 적 맨몸을 말리던 냇가가 나오곤 합니다
7월 햇볕에 달구어진 조약돌 위를 작은 고추 흔들며 팔짝거린 채
뛰어가던 내가 그 울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소의 큰 눈망울에 작은 고추에 그대 맑은 울음이 겹치고 있는
것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당신은 옛적 울음을 우는 사람입니다 서글픔으로 오래 적셔온
팔소매 걷어 제치고 어깨선까지 훌쩍이며 우는 울음으로
그대 등이 그렇게 둥그스름해 졌나요
저녁江이 그렇게 붉어 졌나요


 

해찰하다*

문정영        


사립밖에 나서면 참 해찰하고 싶은 것들 많다
막 눈 뜬 한해살이풀꽃과 그 위를 너울 쓴 듯 앉아있는 작은 나비들,
느리게 번진 강의 물안개가 거기까지 와서 소꿉장난하고 있다

뜬금없는 바람이 염소의 수염을 흔들고 가는 것도 보이고
짜 부러졌다가 펴진 냄비 안에서 강물도 한참을 끓는다

한 겨울 앞강은 얼고, 강물은 얼음 아래서 천천히 흐르고,
지금까지 흐르고,

지금 내 가는 길에 해찰할 것 참 없다 시간에 갇혀서
눈, 귀에 갇혀서 다른 무언가에 갇혀서
사금파리 빛나던 날들로 그어보던 느린 해찰은 없다

지금 나는 어린햇살에 온통 맨살 맡기고 不在중이다 


*해찰하다 : 딴청부리다의 전라도 사투리

 

 

 

시인의 말

 

아직도 임계점이 멀었다

 

설익은 밥알뿐이다

 

2014년 가을

문정영

 

 

 

 

시산맥사 2014년 9월 20일

 

문정영

 

1959년 전남 장흥 출생으로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낯선 금요일』『잉크』『그만큼』이 있음.

현재 시전문지 계간 『시산맥』발행인. 201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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