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물고기 눕다 / 심재휘
丹野
2013. 12. 1. 15:13
물고기 눕다
심재휘
가을 오전의 마른 볕 덕분에 불현듯 생각나는
이 숨 쉬는 일, 참 고맙다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잊고 있다는 것
더욱 고맙다 그런데 이 햇살의 가장자리
작은 어항 속에서는
자꾸만 꼬리가 쳐지는 놈이 있다
늠름하게 몸을 띄워 물속을 걷던
한 물고기가 숨이 가쁜지 수면에 입을 대고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꺼떡꺼떡 기울어진 꼬리로 물을 겨우 딛고 있다
그렁거리는 숨소리, 깊은 우물의 눈빛
어둠에도 빛나던 은비늘의 물고기가
수평을 잃고 곧추 몸을 세워 누워버렸다
수면을 끌어당겨 덮고 그가 몸져누웠다
물속에서 물고기로 사는 일
그저 둥둥 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일
그는 바닥에 가 닿지 않으려 매일 부레를 소진했으리라
새벽마다 일어나 낡은 부레를 채우고 또 채웠으리라
그리고 먼 곳에는
수직을 놓치고 누운 사람
숨 쉬는 일이 진짜 일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