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기억의 자리
丹野
2013. 9. 3. 20:24
기억의 자리
김경성
누군가 늘 있었던 것처럼
아픈 손이 자꾸만 그곳에 간다
많은 날 동안 그가 가리키고 보고 만지며
내성이 강한 어떤 슬픔 같은 것이 자리를 잡아서
손금 사이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암호를 적어 놓았던 것인지
ㅇ과 ㄷ, ㅊ의 경계를 넘어서면 그대로 오류가 되고 마는
감자를 깎다가 손가락 중지를 다쳤다, 뭉텅
떨어져 나간 손톱은 놔두더라도 손가락의 지문을 잃어버렸다
몸을 타고 다니는 미세한 떨림 같은 것들이
경련을 일으킨다
욱신욱신 전신이 흔들린다
마음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
당신을 어루만졌던 손끝이 기억하고 있는
꽃물 흥건한 기억의 자리로
들어간다
- 『시와 산문』201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