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침묵의 발견 / 이만섭
丹野
2013. 8. 1. 23:30
침묵의 발견
이만섭
수문을 열고 나오는 저수지의 물은 파죽이다
제 안에 침잠하던 고요가 사자후처럼
기세를 내뿜는 사이 난간에 피워내는 물꽃
울음의 형식으로
폭죽의 형식으로
폐부가 이렇다는 듯 고요를 쏟아 꽃 피워낸 물의 사연을
새끼줄 같은 내력으로 잇고 가는 강,
말은 애초에 미약해서
도리 없이 침묵을 택했던 것이다
귀의 입으로 소리를 삼키며 천천히 몸속에서 숙성한 말들은
뼈에서 가져온 듯 밀밀해져 마침내
다물어진 관자놀이로 온점을 찍고 나온 듯
침묵 끝에서 울음이 되고 폭죽이 되고
괄호에 묶인 말의 통로는
활주로처럼 단단한 육질의 언어가 되었다
씨앗으로 파종하여 꽃처럼 피워낸 말이
침묵의 갈피에서 가져온 문장이었던 것이다
—《시와 정신》2013년 여름호
이만섭 / 1954년 전북 고창 출생. 2010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