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3. 7. 16. 23:31

피항避港

김명기

 

이국의 겨울바다 위를 떠돌며

점점 굳어가는 것은 심장이 아니라 혓바닥이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단파들이 난무하는 어둠 속

명태를 쫓아온 경상도 사내들의

졸린 목소리를 도청하며

조도 낮은 브릿지 불빛 같은 소리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두고 온 당신들이 나를 잊었을 까봐

한곳으로 몰린 창백한 마음처럼

그 바다위에도 달이 떠 있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뱃머리에서 얼음 깨는 우즈백 사내의

긴 이름을 외우다 이름만큼이나

낯선 그의 고향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곳은 생의 항로에서

밀릴 대로 밀려버린 자들의

마지막 영토였으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도

때가되면 같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살기위해 피해온 북구의 바다에서

이미 나를 버렸을지도 모를 당신들 곁으로

오랫동안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시와경계 2013년 여름

 

출처 : 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
글쓴이 : Jakg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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