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 김신용
丹野
2012. 12. 17. 22:47
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김신용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는 것은, 나무가 제 손을 떨어뜨려 무엇인가를 덮어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다못해 손수건이라도 떨어뜨려
아픈 곳을 가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마치 천수천안처럼, 무수히 달린
저 나무의 잎들,
그 잎들을 하나씩 떨어뜨려, 제 발치에 깃든 것
뼈를 덮을 살 한 점 없이 누운, 아픈 것들을
가만히 덮어주며, 이마를 덮어주듯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나뭇잎들의, 손
그러나 그 나뭇잎 하나도 덮지 못하고 추운 것들이 있는 것 같은 겨울 밤
누군가 곁에 와서 내 손을 나뭇잎처럼 끌어당긴 손이 있었을 것 같아
문득 내가 나무가 되어 서 있으면, 떨어져 내리지 못하고 팔목에 완강하게 붙어 있는
손이
잎맥도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시릴 때가 있다
그 시든 나뭇잎처럼, 추울 때가 있다
그때, 그 나뭇잎을 가만히 끌어당겨 덮고 있는 것
제 몸의 마지막 남은 온기로, 말라버린
나뭇잎을 덮어주는 것
살 한 점 없어도, 따뜻한
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시인동네》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