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로스코의 붉은 새장 / 김연아

丹野 2012. 12. 10. 01:42

로스코의 붉은 새장

김연아

 

 

 

오늘밤 한 슬픔이 나를 알아본다

내 눈이 그를 부른 것처럼

 

내 눈은 많은 그늘을 모으고 있어서

누가 차가운 숨을 내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비극적 주제에 경도된 사람은

고통 받으며 태어나는 붉은 심장을 익사시키려

거기로 떠났다, 망가진 화면 같은 블랙 속으로

 

나는 나의 침대에서 그의 발소리를 듣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죽음과 오랜 친구여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꿈과 심장을 나눠 먹었다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까 봐 두려웠어,

그것은 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곳에 울새의 기억이 있었을까?

 

잠이 찾아와 내 옆에 나란히 누웠을 때

죽음도 함께 잠이 들어서 나의 꿈을 꾸었다

희미한 울음이 나를 관통한다

 

어두운 침수지의 나무 그림자가 수면 안에서

수면 밖과 조응하듯이

반투명 한지 같은 잠과 꿈 사이,

 

잠의 새장을 빠져 나오려고 울새가 울고

꿈 밖에선 문을 할퀴며 고양이가 울었다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기차를 따라가며

유리창의 얼굴을 만지려는 손처럼,

당신의 손자국에 내 손가락을 갖다 놓는다

 

울음이 번진 흔적 위에 또 덮어쓴 흔적

 

밤의 연골이 내 손목뼈에서 느슨해질 때

나는 경계가 흐려진 단어들을 줍고 다녔다,

평범한 말로는 애도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숨이 꺼져가듯 사라져가는 음, 이라고 쓴

말러의 마지막 악절처럼

나는 모든 소음들이 잦아드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은 당신의 반그림자 속에 떠돈다

내 잠은 당신이 손가락을

집어넣는 순간부터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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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로스코(1903 -1970) : 러시아 태생의 미국 화가. 서로 스며드는 듯한 색면들의 병치로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초기 레드 색면에서 후기 블랙으로 옮겨가면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영혼을 빨아들이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한다.

 

                         —《시와 환상》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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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 경남 함양 출생.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 200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