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2. 11. 29. 20:04

 

  수집가

 

      박성현  

 

 

  

  문은 촛불을 끈다. 촛농이 아리나발마(阿離那跋摩)의 모래 가득한 짚신에 떨어지기 전이다. 화첩의 은유는 고집스럽다. 문의 가죽장갑은 영하의 입김 속에서도 그 사실을 기억한다.  

 

  무소의 뿔이 발톱을 찢는 소리가 목록에서 새어나온다. 수타니파타를 감싼 붉은 양피(羊皮)에 혓바닥을 댔을 때. 수많은 탁류가 국경을 가로질렀다. 도서관 지하창고에  

 

  유리들이 벌레 먹은 책장처럼 포개져 있다. 문은 한 손으로 유리 부스러기를 만지다가 서지에 누락된 책의 이름을 기록한다. 기호의 미로를 따라 문은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잘라냈다.  

 

  붉은 얼룩이 철자와 철자 사이를 흘러 다닌다. 도서관 지하창고에는 수많은 초판본들이 방치되어 있고, 문만이 그 달착지근한 종이뭉치를 씹을 수 있는 것.  

 

  문의 도해는 식은땀을 흘렸다. 잔뼈에도 오카리나 같은 구멍이 뚫린다. 풍향을 감지하던 책의 감각이 먼지가 수북한 마호가니 책상에 닿는다. 문의 손등에 얽혀 있는 문자들이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계간 『미네르바』 2011년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