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금 / 신현락
丹野
2012. 4. 7. 08:57
금 / 신현락
한때는 그랬네.
땅 위에 금을 그으며
여기 넘어오면 안 돼, 넘어오면 죽는 거야, 하면서
네 편 내 편 서로 금을 밟지 않으려고
금 밖에서 빙글빙글 돌았던 적이 있었네.
나도 그랬네.
누군가 금만 그으면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가지 못하는 줄 알았네.
그날 밤 나와 너 사이에 그어진 금을
내 새끼손가락은 얼마나 넘어가고 싶었던가.
땅 위에 금을 그으며
여기는 내 집이야.
순금으로 지은 집으로 착각한 옛날도 있었네.
나도 너의 금이었을까.
넘어가서는 안 되는 국경처럼
머나먼 금기의 이역에서
깃발만 펄럭이고 있었을까.
한때는 너와 나
금 밖에서 서성거렸으나
이제는 금 안에서 금 밖을 기웃거리네.
지금 저 금 밖에서 우는 사람아
그곳은 금 밖이 아니고 금 안이라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금 안에서 우는 거라네.
신작 소시집 『우리詩』2012년 4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