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젊은 시 2012 / 장요원-[작품 평설] 바람의 의지와 역동성 / 홍용희

丹野 2012. 2. 26. 07:59

 

 

 

 /  장요원

 

 

 바람의 손끝에 춤이 묶여 있다

  

 몸을 벗어버리자

 바람들이 옷으로 들어온다

 옷이 한번도 해보지 못한 동작을 한다

 그림자들이 바닥에서 춤을 춘다

    

 바람이 손끝으로 줄을 밀고당기는 동안

 빨래집게가 햇볕을 꽉 물고 있다


 날아가지도 못하는 공중에 관절들이 가득 들어있다

   

 셔츠를 입은 바람이 줄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안간힘을 쓰며 놓지 않는 햇볕의 어금니,놓아달라는 듯 늘어진 팔이 줄을 후린다

 미니스커트 속으로 바람이 든다

 점점 팽팽해지는 바람의 근육,

   

 수백 마장 바람의 층에 동작들이 접혀 있고

 한 호흡 한 호흡, 넘어갈 때마다 물기들이 퇴장한다

 눅눅한 관절이 경쾌해진다

   

 바닥에 매달린 춤이 다 마를 때까지

 다행히 오후는 햇볕을 끄지 않았고

 공중은 매여 있어

 몸을 비워낸 춤들이 반듯하게 개켜지는 저녁,

   

 빨래집게들만 캄캄하게 남아 밤새 어둠을 말릴 것이다

 

 ㅡ등단작

 

 

 

 

 

 

저수지

             

   

 그녀의 커다란 눈을 멀리서 들여다 본다  

 고요가 출렁임을 꾹 누르고 있다 가라앉히지도 엎지르지도 못한 마음들이 水皮처럼 일어, 고여 있는 듯 같은 자리를 부유한다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종족은 품는 습성이 있다지

 이미 떠나버린 철새들의 발가락이 꿈틀거린다  지난밤 달이 부려놓은 시름을 토닥거린다

 

 어쩌면 그녀의 온몸은 태胎인지도 모른다

 

 소나기가 발끝을 세우고 빙글빙글 돌자 어지러운 듯 울컥거린다 

 꼬리 긴 바람이 마법을 걸어 파동을 일으킨다

 

 수만 번 제 숨을 조였다가 푸는

 물의 태동,

 

 오랜 시간 자신의 씨앗을 품지 못한 그녀의 태동은

 이 계절을 분만하고 나서도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서쪽 하늘에 걸린 생리혈이 그녀의 눈망울로 번지고 있다

 

 ㅡ등단작

 

 

 

 

풍선들

 

  

  빵빵하던 이팝나무들이

  끈만 남겨진 채

  푹,

  꺼져 있다

 

  쭈글쭈글한 바람이 펴지려고 나무의 그늘이 가렵다

 

  숨을 뒤척이는 바람의 발아,

 

  여름은 온통  코를  땅에 박고 숨을 불어댔지

  바람이 쑥 쑥 자라났고

  우리의 폐는 그늘처럼 커졌어

 

  가끔, 커다란 허파를 가진 바람이 공중으로 날려 보내려고 안달이 났지만 

  끝내 

  주둥이를 놓지 않았지

 

  우리가 마주보고 스틱을 휘휘 저을 때면

  카푸치노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지

  푹 푹 꺼졌지

  가을은 어지러움증을 앓았고

  허공의 손톱은 

  자꾸만 까칠해졌지

  

  어둠이 불어놓은 태양이

  빈 끈에 매달려 있는 아침,


  주저앉은 둥그런 그늘이 일어서고 있다

 

  ㅡ기 발표작

 

 

 

 

 

허공 한 켤레

 

   

 신문지 몇 장이 돌돌 말고 있는 절름발이 잠에

 두 발이 나와 있다

 걸음이 빠져나간 무릎이 조용히 접혀 있다

 

 오래된 타일처럼 금이 간 발바닥을 발등이 둥글게 감싸고 있지만

 바깥은 잠을 안으로 들여놓지 못한다 

 

 길이가 다른 두 발 사이에는

 기울어진 계단이 접혀져 있다

 오르고 내릴 때마다 접혀졌다 펴졌을 계단,

 절름발이 계단에는

 횡단보도를 끌던 얼룩말이 뛰고

 음계 없는 크락숀 소리가 가쁜 숨을 누르고 있을 것이다

 

 걸음 안에는 허공이 들어 있다

 

 뒤집혀 있는 저 걸음에는

 절뚝거리던 길들이 끌고 다녔을 몇 켤레 구름들이 접혀 있을까

 어쩌면 걸음은

 허공을 신고 다니는 일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온종일 끌다  벗어버린 그믐달의 뒤축이 부어 오른다

 

 아코디언처럼 접히고 휘어진 길이 늘어났다가 줄어들 때마다 

 허파가 새어나오는 걸음이

 밤새 자라고 있다

 

  ㅡ기 발표작

 

 

 

 

     

 

 

키위 속의 잠

 

 

  검푸른 담요로 달아나는 잠을 돌돌 말았다

  눈을 피하기 좋은 가장 알맞은 빛깔에 몸을 가두었다

  밖을 가두었다

 

  밖이 꺼졌는데도 밖은 자꾸만 환해진다

 

  너를 밀쳐내도 너는

  매듭이 없는 나를 풀고 들어온다

  벽에 갇힌 초침이 고요를 똑 똑 삼킨다

 

  견고했던 머리가 점점 연해져 간다  의지와는 상관 없다는 듯, 슬픔은 말랑거리고 질척한 질감이이서 더욱 슬퍼진다  수면제를 먹어도 속살이 달달하고  미끈거린다  낮을 농축시킨 밤이 씨앗으로 하나 둘씩 여물어간다 불온한 계절에도 성실한 결정結晶들,

 

  밖을 둘둘 감고 있어도  

  밖은 여전히 환하다

  중심의 발원은  늘 몸 밖의 일이라  빗살처럼 머리가 밖으로 자라난다

 

  수평에 눕지 못한  생각들이 비스듬히 서 있다

 

 ㅡ신작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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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의지와 역동성

 

홍용희 

 

 

 물질이 생의 약동에 의해 창조되는  것처럼 장요원의 시세계는 바람의 운동에 의해 창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편은 바람의 의지에 의해 발원되고 수렴되고 확장된다. 그래서 시적 상상이 역동적이고 활달하고 현란하다. 한시라도 시적 상상의 중심점이 "수평에 눕지 못"하고 있다. "수면제를 먹어도 속살이 달달하고 미끈거린다"(「키위 속의 잠」). 이러한 '바람'이 점차 '발아'하면서  「풍선들 」의 장면 연출, 계절의 변동에 따른 바람의 역동성이 묘사되고 있다.  여름에는 "바람"이 쑥 쑥 자라났고 ", 가을에는 "푹 푹 꺼"지면서 "허공의 손톱"이 "자꾸만 까칠해"진다. 바람의 형상을 통해 우주의 순환주기를 묘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바람의 형상으로 계절의 변동을 묘사하는 발상이 신선하다.

 이와 같은 바람의 현상학이 조금 미시적으로 그려지면 "걸음 안에는 허공이 들어 있다 // 뒤집혀 있는 저 걸음에는 / 절뚝거리는 길들이 끌고 다녔을 몇 켤레의 구름들이 접혀 있을까" (「허공 한 켤레 」)와 같은 표현을 낳는다. 바람이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질료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걸음걸이는 '허공 한 켤레'가 된다. 어디 걸음걸이 뿐이겠는가.

 

                        아코디언처럼 접히고 휘어진 길이 늘어났다가 줄어들 때마다

                        허파가 새어나오는 걸음이

                        밤새 자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세상의 길까지도 바람의 결과물이라고 인식한다. 이를테면 "아코디언처럼 접히고 휘어"지면서 '길'이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 있어서는 '바람'이 , 인간에 있어서는 '허파'가 삶과 사물들의 무한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바람의 현상학이 가장 적나라하게 가시화되는 것은 춤이다. 춤이란 바람의 운동성이다. 즉, 춤은 옷으로 들어온 '바람'의 역동성이다. 바람은 "옷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동작을 한다". '관절'들은 공중에, 가득 들어 있는 물체이다. 다만 관절은 "셔츠를 입은 바람이 줄에서 빠져나가려고"할 때 이를 지탱해주는 근력이 될 따름이다. '바람'이 춤의 질료이며 형상 그 자체이다. 바람의 현상학이 '춤'과 만나면서 자신의 빛깔과 형태와 성격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장요원은 바람의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바람의 역동성과 생성력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에 그치고 있다. 바람이 세상에 어떻게 참여하고 어떠한 변화를 몰고 어떠한 의미를 창조하는가에 대한 상상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바람의 사회성, 바람의 역사성, 바람의 시대성에 관한 구체적인 탐구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정위원 / 홍용희

 

 1966년 경북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 당선. 주요 저서 『김지하 문학연구』『꽃과 어둠의 산조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편저) 등. 제1회 젊은평론가상, 제13회 편운문학상, 제12회 시와시학상, 제21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현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ㅡ 젊은 시 2012 (문학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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