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2. 2. 15. 08:39

 

 

 

 

결핍의 형식 / 신현락

 

 

어느 날 석양 무렵

시간의 입술에서 음악회 초청장이 날아왔다

배추흰나비 날아오는 쪽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의 입술은 쉽사리

접속을 허락하지 않았다

꽃잎의 아이디와 배추흰나비의 비밀번호 가지고도

다시 확인하라는 메시지만 뜨고 지고

 

나는, 꽃잎이 피고 지고

누군가의 사원이라고 썼다

배추흰나비의 두 날개 펼쳤다 접혔다

배추속이 궁금하다, 고 적은 후

노트를 덮었다

 

듣고 싶어라, 꽃잎이 피고 지는 시절,

배추흰나비의 동선을 따라 다닌 건

순전히 시간의 입술 때문이었다

 

낮은 음에서 한 옥타브 높은 음까지

나비 날개의 음역을 빌어서

꽃잎의 입술에 입을 맞추다 보니

제법 매미노래방 아가씨들에게

푸른 배춧잎 몇 장씩 뜯기게 되었는데

노래로는 매미의 붉은 입술도 훔치지 못했다

 

시간의 입술에 접문하는 방식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나의 결론이지만

오늘 저녁에도

꽃잎이 피고지고, 나는

나비의 날개보다 더 환한 배춧쌈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