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9. 8. 12. 14:47

 

 

    비봉리 *환목주丸木舟 / 김경성

     

     

    나는 버려졌다

    몸 가득히 펄럭거리던 물고기의 비늘도 말라붙었다

    그물을 빠져나가는 물고기떼를 바라본다

    가슴 한 켠, 기울어진 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의 농도는

    절여진 슬픔만큼이나 진하다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까지도 뱃전에 세워놓고

    떠나지 못한 것들은 늪으로 스며들었다 

    물억새꽃 핀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엷은 바람이 **초흔(焦痕)을 스칠 때마다 가려움증이 번졌다

    물방개 발톱은 보리까시락에 찔린 것처럼 콕콕거렸다

    직립의 시간 원본 그대로 늪 속에 밀어 넣었다

     

    숨죽이고 들었던 소리 쌓이고 쌓여서 한 겹이 되고

    겹이 늘어갈 때마다 점점 멀어져가는 세상

    천 년이 여덟 번이나 흘러갔다, 흘러간다는 것은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것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새싹돋고 나뭇잎 떨어지는, 눈꽃 피었다가

    사라지는, 바람이 짚고 다니는 구름의 환락

     

    닿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빛으로 꼬아놓은 씨실, 늪 깊은 곳까지 걸어놓고

    허공에 무늬를 짜는 해와 달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버리고 떠났던 그 사람이 돌아왔다

    늪을 짚고 빠져나와서 바닷물의 농도에 생을 맞추었다

    그물 펼쳐놓고 노를 어루만지던 손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펼쳐놓은 그물에 저녁노을이 걸쳐있다

    물 위에 둥둥 뜨는 나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200년 된 소나무의 단면을 U자로 파낸 통나무형 선박으로

      비봉리 저습지 유적지에서 8000년 전 신석기시대 환목주를 발견하였다

     

    **배의 제작 과정에서 불로 태우거나 그을러서 가공한 흔적

     

     

      

     

    - 신작 소시집 『우리詩』201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