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한국 온 佛 구두 '명장'
丹野
2011. 4. 29. 08:54
"남자 구두는 女體"
한국 온 佛 구두 '명장' 코르테씨
"날씬하게, 관능적으로, 완벽한 곡선미로 만들어야"
한 켤레에 200만~2000만원 "브루나이 국왕도 내 구두 신죠"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 입력 2011.04.29 07:32 | 수정 2011.04.29 07:32
"흔히들 남성화는 딱딱하고 강인한 구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의 구두야말로 완벽한 곡선으로 이뤄진 관능의 결정체다. 여성적인 곡선을 최대한 활용해 부드럽게 만들수록 제대로 된 남자 구두가 나온다."
↑ [조선일보]카메라 앞에서 자유자재로 표정과 동작을 바꿔가며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구두 명장 피에르 코르테. 그는“요즘도 완벽한 구두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매일 아침 눈을 뜬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왜 남자 구두인가.
"부드럽고 단단하고 움직이는 존재여서. 비행기·자동차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직선인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지극히 감각적이다. 여체(女體)를 공부하는 심정으로 남자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웠다."
―여자를 연구하는 심정이라니….
"구두는 말랑하고 부드러운 발을 담는 그릇이다. 가장 여성적인 곡선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몸에 착 감기는 신발이 나온다. 새 부리, 나뭇잎, 자동차 앞면, 여자의 허리 같은 곡선 말이다. 덕분에 내 구두는 길고 날씬하고 관능적이다."
―16세 때부터 구두를 만들었다는데 제대로 된 구두를 만들기까진 얼마나 걸렸나.
"20년 정도. 그때야 비로소 구두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근사한 구두를 실물로 구현하기까진 그 후로도 10년이 더 걸렸다. 지금도 만들고 싶은 구두는 수백 개인데 내 손이 그 머릿속 이미지를 따라가진 못한다."
―무엇이 특히 어려운지.
"처음 발을 넣었을 때의 감촉을 10년이 흘러도 유지하게 하는 것.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매일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무엇보다 신자마자 긴장과 흥분을 느끼게 하는 것."
―실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일단 고객의 발에 꼭 맞는 목각 틀(라스트)을 깎아 만들기 위해 무척 공을 들인다. 그다음 고객과 상담해 모양을 정하고 꼼꼼하게 바느질한다. 예전에 한 고객이 발등 부분을 더 길고 늘씬하게 만들어달라 했는데, 구두를 무작정 길게 만들면 발이 아프다. 고민하다 구두끈 넣는 구멍을 세 줄에서 두 줄로 줄였다. 구두 크기를 바꾸지 않고도 구두가 더 길어 보이도록 한 것이다. 내놓자마자 여기저기서 주문이 속출했다."
―색깔에도 특별히 신경 쓴다는데.
"수채화처럼 붓으로 여러 겹의 빛깔을 칠해 색을 만든다. 가령 우리 가게엔 똑같은 검정 구두가 없다. 어떤 구두는 가짓빛이 도는 검정, 어떤 구두는 부르고뉴 와인처럼 빛나는 검정인 식이다."
―자기 취향과 생각만 고집하는 고객도 있을 텐데.
"종종 있다. 내가 봤을 땐 올리브 초록빛이 도는 구두를 맞추면 참 좋을 사람인데 굳이 탁한 갈색을 고집한다든가, 발볼이 넓은 데도 좁고 불편한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식이다. 이럴 땐 끝까지 설득해 보고,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 다른 곳으로 가길 정중하게 권한다."
―'메트르 다르' 칭호를 얻은 비결은.
"구두에 유머감각을 입혀서가 아닐까. 난 격식 있는 옷차림에만 어울리는 신사화가 아닌 다양한 상황에서 재치 있게 연출할 수 있는 신발을 추구한다. 그 순간의 낭만과 행복을 최대치로 만끽하게 해주는 신발을 만들고 싶다."
코르테의 신발은 이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 'g.street 494 homme'에선 5월 15일까지 그의 작품 40여점을 무료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