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野 2010. 10. 22. 00:47



                      

저물 무렵  

                   

 김경성

 

이제 막 초록으로 번져

수묵담채화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저수지 물결 잠시 흔들리더니 재두루미 낮게 날아서

둑 너머로 날아갔다

재두루미가 떨어뜨리고 간 깃털 하나

내게로 와 몸에 붙었는지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벼워지며

파문이 일듯 가슴 언저리가 저렸다

빛과 어둠이 섞이는 시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꿈결 같아서

나는 깃털 떼어내지도 못하고

아주 잠시

하늘을 날았던 것 같기도 하고

새집을 지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저수지 밑바닥까지 들어가

물풀 몇 개 뜯어

하늘 높이 치솟았던 것 같기도 하고

 

저물 무렵,

내 안에 가라앉은 존재의 아름다움이여

수위 낮은 저수지

물결무늬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다 해도 좋겠다

 

 

 - 시집 『 와온 』 문학의 전당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