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어서 더 화려할 목련 꽃의 개화를 기다리며
[천리포 이야기 II] 조금 늦어서 더 화려할 목련 꽃의 개화를 기다리며
[2010. 4. 26]
천리포수목원에서는 한 해에 두 번의 큰 행사를 치릅니다. '후원회원의 날'이라는 이름의 회원 초청 행사입니다. 지난 주말에 바로 그 행사가 있었습니다. 봄 가을로 나누어서, 우리 수목원의 식물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어느 하루를 정해서 진행하는 행사이지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택일입니다. 모처럼 회원을 모시는 날이니만큼 가장 좋은 날을 잡으려는 거지요.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습니다. 행사를 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달 쯤 전에 날짜를 잡아야 하잖아요. 하지만 한달 후의 날씨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어쩔 수 없이 지난 몇 해 동안의 평균치를 바탕으로 올해의 날씨를 잘 견주어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짜를 정하고 나면, 수목원 지킴이들은 행사 당일까지 안절부절못합니다. 행사 당일에 기대하는 것처럼 목련 꽃이 잘 피어날 지 조마조마한 거죠.
올 봄에는 그 걱정이 유난히 컸습니다. 행사 날짜를 잡을 때만 하더라도 지난 겨울의 날씨가 따뜻해서 개화가 빠르리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날짜를 잡아놓고, 회원들께 행사 날짜를 통보하는 안내문을 발송하고 나서부터의 날씨 변화는 우리의 예측을 한참 벗어났습니다. 그것도 기상대에서조차 이변이라 할 정도의 이상저온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따뜻한 봄 바람 맞으며 목련 꽃 봉오리가 입을 열 채비를 마칠 즈음, 모두 기억하시겠지만 갑자기 날씨가 영하에 가까운 날씨를 보였지요. 그렇잖아도 천리포 지역의 바닷바람은 매우 찬 편인데, 영하에 가까운 기온은 여린 살갗을 조심조심 드러낸 목련 꽃봉오리들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피어나야 할 목련 꽃들이 졸지에 몸살 감기에 들었습니다. 조금 이르게 피어나야 할 꽃들이 '냉해(冷害)'를 입은 겁니다.
서둘러 피어나기 시작한 목련 꽃들은 대부분 냉해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주초에 내렸던 비를 맞아, 그나마 애면글면 피어난 하얀 꽃들조차 제 빛깔을 온전히 내지 못했습니다. 꽃잎 곳곳에 멍이 들었지요. 우리 수목원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큰연못 옆의 큰별목련 Magnolia 'Big Bertha' 도 그랬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그 큰별목련의 사진입니다. 멀리서 봐도 그 풍성한 멋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큰별목련은 평균 잡아 다섯 송이 가운데 두 송이 정도는 이미 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 시들어 있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주말 쯤부터 꽃봉오리의 여린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꽃송이들이 싱싱하다는 것입니다. 그 꽃들은 이제 겨우 꽃잎을 드러낸 뿐이어서, 지금부터의 날씨에 특별한 이상만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말 정도까지 무척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리라 예상하게 됩니다.
지난 주말 우리 수목원의 목련 꽃이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공연히 올린 듯합니다. 늘 기대가 큰 때문일지도 몰라서요. 이리 모진 날씨에 이 정도먼 충분히 아름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지난 해 봄에 우리 목련들을 보고 나서는 한햇동안 내내 머릿속에 우리 목련들을 더 아름답게 그려넣고, 그런 마음 속 그림의 목련만 계속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몇몇 목련이 분명히 지난 해 봄에 비해 덜 화려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목련은 목련입니다. 언제 바라봐도 그 고아한 자태를 잃지 않는 훌륭한 나무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대표적인 현화식물이지요. 오락가락 하는 날씨 때문에 한꺼번에 그 많은 목련들의 화려한 자태를 한꺼번에 볼 수야 없지만, 그래도 가만가만 그들이 비춰주는 속살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열흘에서 보름 정도 동안은 우리 수목원의 목련들은 변함없이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겁니다. 지난 주말에 만나보았던 목련 가운데에는 단연 Magnolia 'valcan'이 백미였습니다. 큰연못 가장자리에 서있는 이 목련은 우리 수목원의 설립자인 고(故) 민병갈 님께서 유난히 좋아하던 목련이라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올렸습니다.
목련 꽃잎의 바깥 면과 안쪽 면 모두가 고른 핑크 빛을 가지는 이 화산처럼 붉은 목련 꽃이 올해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합니다. 엊그제 수목원을 찾아오신 관람객들 중에 많은 분들이 대개는 이 불칸 목련 앞을 지나면서 한번씩은 감탄사를 내놓으셨고, 또 어김없이 그 붉은 꽃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목련 만큼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피어난 꽃이 바로 진달래였습니다. 역시 우리 수목원의 개화 시기는 참 늦은 편입니다. 남부 지방은 물론이고, 태안보다 북쪽인 경기 지방에서도 진달래가 꽃을 피운 건 벌써 한참 전이었지요. 심지어는 벌써 낙화를 마치고, 잎사귀를 올리는 게 대부분인데, 우리 수목원의 진달래들은 이제 한창입니다. 곳곳에 한 두 그루 씩 표찰도 달지 않은 채, 서있는 우리 꽃 진달래가 참 곱고 예쁩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진달래는 비교적 키도 크고 옆으로도 매우 풍성하게 퍼졌습니다. 꽃도 다른 곳에서 보는 진달래에 비해 튼실하고 고와 보입니다. 굳이 과장하거나 광고하려는 게 아닙니다. 곱디 고운 진달래 꽃이 이리 무성하고 풍요롭게 피어난 것은 그리 쉽게 만나지 못합니다. 물론 진달래는 시골 길가의 낮은 산에 듬성듬성 피어나도 예쁘고 정겨운 게 사실이지만, 우리 수목원의 진달래가 보여주는 또다른 멋은 오래 잊지 못할 겁니다.
얼마 전에는 수목원의 비공개 지역이던 목련동산 비탈 아래 쪽 담장을 허물고 담장이 있던 자리에 산책 데크를 놓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이 진달래가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이 길은 가파른 비탈이 면해 있기도 하고, 옆으로 마을 논이 있어서 데크를 놓기 전까지는 걸어갈 수 없던 곳이었지요. 그렇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은 건지도 모르지요.
목련 아닌 다른 식물에 눈을 돌리면, 더 많은 아름다운 식물들이 있습니다. 작디 작은 식물들이 곳곳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계절이니까요. 물론 목련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천리포수목원이니, 기왕이면 그 많은 목련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에 찾아보는 게 가장 좋다고는 하지만, 목련 아니어도 저마다 제 빛깔과 향기를 뽐내는 많은 식물들이 지금 한창 봄 노래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이면 도시의 꽃집에서 한 포기씩 화분에 담아 판매하는 무스카리도 무리를 지어 활짝 피었습니다. 흰 색과 노란 색, 뒤이어 붉은 색의 꽃이 피어나 화려한 봄을 노래하지만, 그 안에 이 무스카리처럼 푸른 빛을 한 작은 풀꽃의 화려함은 이 봄 우리 수목원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리고 꽃샘추위에 밀려 개화기가 열흘 쯤 뒤로 밀려난 다른 목련들이 가장 화려한 절정을 이룰 지금부터의 열흘 쯤을 다시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팍팍하게 짜인 일정표 사이에 억지로 틈을 내 '목련 만나는 날'이라고 적는 손길에 가느다란 떨림이 담기네요.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