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황학주 / 나는 길에 떨어진 걸 줍지 않아

丹野 2011. 1. 14. 13:31

p r a h a

 

나는 길에 떨어진 걸 줍지 않아

 

                                                     황학주

 

 

 

 

 

퇴근길에 가느다란 반지가 발에 밟혔다

인도에 떨어져 환하게 놓인

 

길에 떨어진 걸 줍지 않는 건 오래된 습관,

돈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고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지갑이 떨어져 있어도 못 본 체한다

 

풍뎅이나 하늘소 같은 것이 아니라면

줍지 않겠다는 그런 결심은

가난한 소년 시절을 받치어준 목발이었는데

금반지와 지폐를 주운 적 있는 어머니

그 후로 땅만 보고 걷는 어머니가 싫었기 때문이다

 

귀밑머리 허연 중년이 되어서도

땅에 떨어진 걸 줍지 않는 고집은

어머니를 줍고 싶지 않았던 것,

어머니

굽어가는

뼛골이 점점 땅 가까이 떨어지는 게 겁이 났기 때문

 

이제는 내 허리 구부리는 게 덩달아 겁이 나

땅에 떨어진 걸 줍지 못한다

길에 떨어진 가느다란 반지 같은 생을

밟고 있는 눈동자는 무겁지만

오늘 나는 죽어라 버틴다

 

길 위에 떨어진 길,

언젠가 어떤 손이 나를 줍긴 할 테지만

 

『 유심 』 2010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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