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피터 바돌로뮤의 한옥 사랑

丹野 2010. 10. 9. 09:09

 

철거 위기 한옥 구해낸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의 한옥 사랑

레이디경향 | 입력 2010.10.08 14:03

 

40여 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삶의 터전으로 삼은 한옥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한 미국인이 최근 항소심에서 승소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웃 주민들과 함께 동소문동 한옥 밀집 지역을 고집스레 지켜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씨, 그의 특별한 한옥 사랑 이야기.

42년 전 처음 만난 한옥,
강릉 '선교장'에서 한옥과 맺은 인연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6가. 지하철역에서 3분 정도만 걸으면 상가 건물과 현대식 빌라들 사이에 고색창연한 한옥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1927년에 지어진 이 한옥은 피터 바돌로뮤씨(62)가 1974년 매입해 37년째 살고 있는 집이다. 'ㄱ'자의 한옥인 그의 집은 살기 위해 지은 집이 아니라 팔기 위해 만들어진 '장사 집'이었다고 한다.

봄에는 볕이 들고, 여름이면 마당에 있는 8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는 이 한옥에서 바돌로뮤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서울시는 2004년 6월 바돌로뮤씨의 한옥을 비롯한 이 일대를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고, 성북구청은 2007년 10월 이 지역에 노후불량주택이 60.37%나 된다며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처분을 내렸다. 이에 동소문동에 있는 한옥 43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고, 바돌로뮤씨는 전통가옥의 보존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비구역 지정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정비예정구역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노후하거나 불량한 건축물의 비율이 60% 이상 되어야 하는데 동소문동 일대는 노후 및 불량 건축물이 총 160동 가운데 94동인 58.75%로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서울시의 정비구역 지정 처분은 맞지 않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2004년 이 지역이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을 때만 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다들 법에 무지한 서민들이다 보니 2007년 구청에서 복잡한 법률과 절차를 들이대며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이 되었을 때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거예요. 의견이 맞는 사람들 20명 남짓 모아서 지정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죠. 2009년 6월에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를 받았고 2심에서도 승소하게 된 겁니다."

긴 싸움 끝에 한옥 밀집지역 철거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재개발 추진위원회에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소문동6가와 7가를 재개발하는 새로운 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고단한 투쟁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른다.

현재 IRC 선박 컨설팅 업체의 부사장인 그는 거제도와 진해 등 잦은 지방출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한옥에 관련된 일이라면 열 일 마다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가 한옥에 매료된 것은 1968년 미 평화봉사단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오면서부터다.

나이아가라 시티에서 태어난 바돌로뮤씨는 큰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지점 발령을 받을 때마다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뉴욕 주, 미시건 주 등 여러 지역에서 거주했다. 어릴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국의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당시 머물렀던 강원도 강릉 일대의 오래된 한옥과 정자, 누각 등 문화유적들을 찾아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조선시대의 유명한 고택인 선교장(船橋莊)을 접하면서 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었다.

"강릉에 있는 선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약도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연못과 정자가 있는 99칸짜리 한옥이더군요. 자주 갔더니 주인 할머니와 친해져서 그곳에서 기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어요. 방마다 아궁이가 있는 큰 집이었는데 청소할 수만 있다면 마음껏 공간을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주저 없이 활래정(活來亭)을 찜했죠(웃음)."

당시 선교장이 있던 곳은 1970년대 초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원산발전소에서 전력을 끌어왔기 때문에 남북이 분단된 이후 전력이 끊긴 것. 하지만 전기 없이 생활하는 불편도 감수할 만큼 바돌로뮤씨에게 선교장은 전통 한옥의 미(美)를 배우고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는 가옥이었다. 특히 그가 생활하던 활래정은 인공 연못 위에 세워진 운치 있는 누각으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선교장은 수리를 거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실내장식품 중 일부는 유실되거나 도난당했다. 이곳에서 청년기를 보낸 그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서 깊은 전통 한옥이 대대적으로 소실된 시점은 일제강점기 때. 이후 새마을운동으로 다시 한번 상당수의 한옥이 철거되었고, 현재는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것들마저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1960년대에는 한옥이 아주 많았어요. 한옥이 특별한 가옥 형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사는 '집'이었던 거예요. 1970년대 중순까지 서울에 한옥은 80만 채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어 7000~8000채밖에 남지 않았죠. 지방의 경우 전라도나 강원도 영동 지방, 특히 명주군 주변을 제외하면 한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유럽에서는 단지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고 해서 철거하는 경우는 없다. 정부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먼저 오래된 건물을 보물처럼 아끼고 지킨다.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지방의 정체성이고 국민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싫으면 팔고 다른 곳에서 살면 되지, 왜 굳이 부수고 새 집을 지으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재개발과 함께 사라지는 서울의 정체성,
'한옥은 불편하다'라는 편견부터 버려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옥 보존에 둔감한 것에 대해 그는 '잘못된 교육'을 이유로 꼽는다. 모두가 문화재의 가치는 강조하면서도 정작 한옥이 전통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교육하는 데 소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옥이 불편하다며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한옥에 대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

"흔히들 한옥은 손이 많이 간다, 불편하다고 말해요. 한옥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건물이든 20년, 30년이 되면 보수 관리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미국 동부 지역에 가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예전에 지어진 집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유럽엔 중세시대의 고택들과 고성들도 많이 있죠. 그 건물들은 불편하기로 치면 한옥보다 더해요. 리모델링해서 건물의 외관은 형체를 보존하고 내부는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선조 때부터 살아왔던 집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래된 것은 구식이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업자들이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전통의 흔적을 우후죽순으로 없애는데도 관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옥 고유의 형태와 기와, 돌, 나무 등 원자재는 그대로 살린 채 전선이나 배관 등 불편한 부분을 일부 수리하고 개조하면 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바돌로뮤씨의 동소문동 한옥만 해도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그의 정성 어린 손길로 보수한 덕에 큰 문제없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단다.

"부분적인 수리는 대개 손수 합니다. 20년 전 기와를 모두 내려서 수리를 한 후에 다시 올려놓은 후 지금까지 비가 새거나 하는 일 없이 튼튼하고, 지붕은 일 년에 두 번 올라가서 깨진 부분만 실리콘으로 붙여놔요. 열린 구조의 한옥이 갖고 있는 유일한 단점은 겨울에 춥다는 것인데 좀 보기 흉하긴 하지만 알루미늄으로 된 덧문을 만들어 온풍기와 함께 설치해놓으면 난방에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욕실이나 세탁실 등은 신식으로 만들어놓았지요."

최근 한옥지킴이로 유명해진 그에게 어떻게 하면 한옥에 살 수 있는지 물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이미 때늦은 감이 있다. 전통가옥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한옥을 소개해주고 싶어도 남아 있는 한옥의 수가 적기도 하거니와 그마저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존폐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서울은 정체성이 없다고 해요. 한마디로 '서울은 재미없다'고 소문났어요. 옛 문화재 대신 빌딩숲과 현대식 건물들로 채워져 있잖아요. 보문동, 제기동, 효자동, 통인동, 옥인동, 낙원동, 안국동 쪽에는 아직도 한옥이 남아 있지만 반 이상이 도시개발계획 예정이랍니다. 종묘와 탑골공원, 인사동이 있는 종로거리를 재개발해 뉴타운을 만들겠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나마 정부가 지정한 한옥보호구역인 북촌한옥마을 역시 예전 한옥을 그대로 살린 것이 아니라 찍어내듯 새로 지어낸 한옥이 대부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업자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한옥을 수리해 보존하기보다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길을 택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인이 한옥에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정부가 계획하고 지정하는 정책에 의해 고유의 주거형태마저 바뀌는 것은 그에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개발을 반대하며 한옥을 고집하는 그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왜 한국인이 하는 일에 외국인이 참견을 하냐는 것. 하지만 그는 우리의 문화를 우리 손으로 버리는 것이 씁쓸하고 안타깝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의 문화유산들이 뿌리 뽑혔다고들 많지만, 광복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새마을운동이다, 재개발이다 해서 전통문화를 쉽게 버리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일본인이 하던 행동을 이제는 한국인들이 자행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한옥 관련 강의도 듣고 수많은 세미나, 심포지엄에 참가해보면 건축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기존의 한옥을 보존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한옥을 '새로 잘' 지을 수 있을까만 궁리하지요."

한옥에 살면서 오랫동안 연구한 덕에 그는 어떤 한국인보다 한옥의 가치를 제대로 알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한옥의 아름다움과 이로움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웃들을 초대해 한옥의 장점을 소개하고 2002년에는 집 뒤편에 붙어 있던 한옥 한 채를 더 사들여 해군의장대를 전역한 청년들의 기숙사로 활용하고 있다. 머물 곳이 없는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 집을 나가면 다음 기수의 해군의장대 출신 학생들이 입주하는 형식이다.

가족이 없는 그에게 학생들은 든든한 가족이자 한옥의 관리자가 되어준다. 청소와 정원 관리를 도맡아 해준다고. 처음에는 한옥에 낯설어하던 젊은이들도 지금은 다채로운 한옥의 장점과 매력에 빠졌다.

한옥 알리기 발 벗고 나서, 한옥의 가치 함께 나누고파

한옥은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건축물이다. 흙, 돌, 나무, 종이, 기와 등 자연 소재를 이용해 인체에 해롭지 않고 그 구조는 지형이나 위치, 계절을 고려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듯 심신이 편안하다고 한다. 한옥의 내부는 장식성과 심미성을 고려해 예술적으로 디자인되었다. 또 문살이나 창살, 병풍과 족자에 있는 글자와 문양들은 장수와 건강, 행복을 의미한다.

"한옥의 난방 방식인 온돌은 또 어떻습니까?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들면서 동시에 온 방이 뜨끈해지니 혁신적인 발명품이죠. 온돌은 세계 어떤 나라에도 없는 거예요. 풍수지리적인 요건은 물론이고 지반의 위치나 높이, 심지어 서까래의 각도와 길이까지 계산되어 있는 한옥은 예술과 철학, 과학, 역사성과 국민성이 응축된 완벽한 건축물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문화유산기금'이라는 단체의 명예이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문화유산기금은 기부금을 후원받아 오래된 한옥 등 전통 건축물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단체로 바돌로뮤씨는 각종 외부 강의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옥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

"가끔 한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옥응급수리센터'를 만들자고 제안을 해요. 한옥 고유의 형태는 살리고 지붕이나 문짝, 욕실 등 고장 나거나 불편한 부분들을 실비로 고쳐주는 거죠. 앞으로 정부는 재개발 부지나 구역을 지정하는 대신 한옥이 왜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한옥 살리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인보다 한국 문화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고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터 바돌로뮤씨. 유창한 한국어 실력 만큼이나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그의 한옥 사랑은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전통과 문화마저 쉽게 포기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곽도은(프리랜서)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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