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따스한 공양 外 / 유진택

丹野 2010. 7. 20. 19:56

 

 

따스한 공양 /유진택

 
파랗게 날선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팬다
힘껏 내려치는 완력에 놀라
장작은 쫙 하고 연하게 쪼개진다
막무가내 튀어 오른 장작을 보면
한때 푸르렀던 젊음이 흥건히 배어 있다
장작의 속살에선 아직도 싱싱한 살내음이 난다
헛간에 차곡차곡 쌓일수록
속살 빼빼 말라 가벼운 몸이 된다
제 속살 속에 스민 물기
세월 속에 죄다 내어주고
참선하는 기분으로 차례대로 아궁이 앞에 눕는다
뜨거운 불꽃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때
장작은 비로소 제 속살 다 태워
지글지글 눈물 흘린다
알고 보니 장작은 지금 소신공양을 하는 것이다
뒷간 토방에 몸 눕힌 노부부를 위해
한겨울 내내
절밥보다도 더 따스한 공양을 하는 것이다

 

 

 

과메기  / 유진택

 
무슨 몹쓸 죄 지어 육지까지 잡혀 올라왔는가
덕장에 걸린 몰골을 보면 그 죄의 깊이를 안다
내장 훌렁 걷어낸 형벌로도 모자라
쇠꼬챙이로 아가미 푹 꿰어 덕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집채처럼 굴러오는 파도를 피해
허약하게 도망치던 일이 씻지 못할 큰 죄가 된 것일까
세상의 불의에 맞서 물찬 몸 초개같이 던지는 일이
개명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면
차라리 꽁치라는 이름이 눈물나게 촌스러워 더 순박하다
과메기로 개명한 것은
촌스러운 꽁치찌개 너무 짭조름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활엽수만한 김 한 장 손바닥에 펴서
양념으로 간 낸 과메기 얹어 맛을 보면
과메기, 과메기 그 이름만 불러도 괜히 흥겹다
과메기가 덕장 속에 숨 막히듯 매달려 있는 것은
그 죄 무거워 벌 달게 받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입맛 다 잃은 사람들에게
싱싱한 몸 통째로 내줘
바다의 깊은 속맛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험한 풍랑이 심심하면 휘몰아쳤을 바다,
그 넓은 바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그리움이란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시에 201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