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석호石湖* / 김명기
丹野
2010. 4. 29. 21:04
p r a h a
석호石湖* / 김명기
세월이 간다는 것은 사람도 따라가는 것이다
외로움도 오래 묵으면 양분이 될 수 있다는 걸
외조부모 벌써 떠나버린 빈집에 와서
수북하게 무릎 위로 자라난 쑥대를 보며 깨닫는다
견디다 견디다 외로움이 쑥대밭이 되어버린 집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젖은 냄새도 바뀌는 것이다
군불의 온기와 함께 빠져나간
밥 냄새와 찌개 잣는 냄새
토막 난 굴뚝 아래
씁쓸한 궁기의 냄새를 따라온
비루먹은 고양이들 눈빛만 처연하다
마음이 찡하지만 다만 이 순간일 뿐
누군가 떠나버린 마음속 빈자리를
아주 빠른 속도로
다른 것들이 점령해버리는 사람처럼
냄새 바뀐 빈자리는
이내 다른 생이 들어와 살아가는 것이다
남편을 앞세우고 홀로 남겨졌던
그녀의 빈속을 채우느라 계속 텅 비우고
마침에 쓰러진 됫병 뒹구는 마당 한켠
문짝 벌어진 통시 속 움츠린 햇살마저도
푸석하게 낡아버린 오후
그래도 때가 되면 저 혼자 피었다 지는
백일홍 나무가 서러워 다가서는 발걸음을
한사코 잡아채는 환삼덩굴이여
긴장한 고양이들 낮은 울음소리여
살아 움직이는 낯선 부재의 모든 슬픔들이여
*경북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 바닷가 마을 이름.
시집『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문학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