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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1758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성복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이성복 詩는 '머리의 언어' 전복시키는 '몸의 언어' “여배우의 모습 밑에서 수녀를 사랑하다니!…” 19세기 프랑스 작가 네르발의 ‘실비’라는 소설의 이 한 구절은 30년의 내 문학적 삶의 도정을 드러내는 적절한 비유로 쓰여질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금까지 내가 문학을 애지중지해 왔던 것은 구두 밑창을 파고든 압정처럼 좀처럼 빠지지 않는 신경증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끌어와 말하자면, 지난 세월 내 혼곤한 문학적 삶은 ‘야심’이라는 의지와 ‘문학’이라는 표상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대체 난공불락의 그 신경증적 야심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까닭으로 하필 문학이라는 탄두를 가지게 되었는.. 2024. 9. 10.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장철문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막 생겨나는 달이 있었다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마음에 막 생겨나는 사람이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 막 돋아난 달처럼 막 피어난 호두나무 푸른 잎사귀 사이로, 돋아나는 사람이 있다는 데 놀라고, 그 사람이 지금 곁에 없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데 또 놀랐다 어스름 바람에 팔랑이는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로, 그 사람도 달을 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생겨나는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람의 씽긋 웃는 얼굴이 호두나무 잎사귀 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어두워지는 호두나무 잎사귀 아래서 그 사람을 보고, 다시 보고 호두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이 살을 감고, 달이 싱거워지고 검은등뻐꾸기 소리와 호랑지빠귀 소리에 귀가 기울고, 하늘에 떠 있는 그 사람.. 2024. 9. 6.
너는 / 전윤호 너는 전윤호 왜군이 독립군의 목을 작두로 자를 때 가족들을 교회에 몰아 놓고 불을 지를 때 지진이 났다고 조선인을 사냥해 죽일 때 사내들은 잡아가 탄을 캐게 하고 처녀들을 잡아가 노리개로 삼을 때 쌀은 다 실어가고 콩깻묵을 먹일 때 무슨 공덕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나 김구를 죽이고 소녀상을 욕보이고 이 나라의 녹을 받으며 왜놈 편이 되는 게냐 배워서 친일하고 정치해서 친일하고 이 나라 군대 계급장 달고 친일하면 누구에게 칭찬 받고 누구에게 충신이 되는 게냐 홍범도가 만주에서 왜놈들을 무찌를 때 총알 하나 보태지 못한 것들이 유관순이 안중근이 옥에서 죽어갈 때 입도 뻥끗 못한 것들이 무슨 낯으로 지금 이 땅에서 푸닥거리나 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게냐 —월간 《문장 웹진》 2024년 9월호 ---------.. 2024. 9. 4.
나무가 말 하는 법 / 송재학 나무가 말 하는 법 /송재학 나무는 무엇을 속삭이는가 꽃의 숨소리 공기의 숨소리 나무의 숨소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섞이고 있다 발자국을 감추는 데서 나무의 말이 시작되었다 바스라지는 가랑잎에는 나무의 말이 같이 흩어지는 중이다 무성한 잎새 속에서 나무의 말은 바람에 스며드는 게 익숙해졌다 나무라는 움직임에도, 森이란 글자에도 나무의 말이 건너가 있다 나무의 말이 죄다 음각화이니까 나무의 말은 점자가 우선이다 소리라 부를 공명통은 망각했지만 입을 닮은 귀의 흔적은 예민하게 남았다 나무의 말은 숲의 모든 그림자를 물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옹이를 더듬자 입말이 준비되었다 나무의 말은 숲의 소리 앞쪽에 있다 저 혼자 소리 내지 않는 말이기에 오래전 사람도 나무의 말을 배운.. 2024. 9. 4.
사람정거장 / 진혜진 사람정거장 진혜진 새벽 종소리로 물든 몸의 정거장에서 한 사람의 여름이 사라지고 있다 한 올만 툭 잡아당겨도 스스로 흩어져 버리는 환幻일지라도 더 이상 비뚤어지는 계절이 없을 때까지 서로의 목적지가 될 때까지 모든 결말을 끌어안았지만 푸르스름한 빛 속으로 사라지고 한 사람이 두고 간 시간이 그림자로 남아 지나가는 모든 발자국을 견딘다 어깨 너머의 꿈은 당신 밖으로 나오지 않은 연민이거나 멈추지 않고 지나간 연인의 이름이거나 의문이 많은 내일의 그림자 누구의 혀가 새벽의 체온을 더듬었을까 싱싱한 죄목들이 토해진 거리마다 팔딱거리는 그늘들 쓸만한 게 없어 함부로 던지는 눈빛을 밟고도 몰리는 무관심 사라지기 전 무엇을 하였는지 버려진 이름이 몇 개였는지 지켜봄이 사라질 때까지 당신을 통과해야 하는 것을 누구도.. 2024. 8. 17.
타클라마칸 / 한영수 타클라마칸 한영수 스스로 죽은 짐승은 먹지 않아요, 양치기의 네 번째 딸은 양을 삶는다 모래구름이 핀다 돌아 나올 수 있을까 가까이 어디에는 아름다움이 부조된 사원이 있다 초승달 눈썹을 비추는 샘도 있어 마르지 않는다는데 생활은 갓길이 없다 걸음마다 부서지며 모래 우는 소리가 난다 한 시간이 십 년같이 서천 서역으로 가는 평생같이 낙타 열네 마리 서로 소중한 말은 둘 말 위의 암탉 열 수탉 하나 개도 세 마리 행렬의 어디쯤에서 나는, 네 번째 딸은 맴을 도나 조용히 흰 터번을 쓰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나 이것은 죽은 양 이것은 죽인 양 선을 긋기도 전에 양은 양을 낳는다 양치기는 양치기를 반복하고 푸른 색 샌들이 갈색으로 흐릿해질 때까지 사구는 살아있는 것처럼 이동하며 모양을 바꾼다 ―계.. 2024. 8. 17.
왼편이 아프다 / 박완호 왼편이 아프다 박완호 내가 가끔 왼쪽으로 기우는 건 왼편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쪽으로 넘어질 때가 많아서이다 어깨가 괜찮은 듯싶으면 발목이 발목이 좋아진 것 같으면 어깨가 순서 없이 때로는 엎친 데 덮치듯 한꺼번에 불편해지는 날이 늘어간다 가운데 서 있어도 어느 한쪽이 치우쳐 보이는 세상 저울판 속 편한 오른편보다 어딘지 모르게 아픈 왼편이 신경 쓰이는 나의 왼쪽을 돌봐줄 곳은 어디에 있나, 염증에 시달리는 왼쪽 대신 오른쪽 어깨와 발목에 잔뜩 힘을 주고 어떻게든 똑바로 걸어가려는 나를, 저만치서 누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계간 《미네르바》 2024년 여름호 ---------------------- 박완호 / 1965년 충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 2024. 8. 17.
밤 카페와 당신 / 안차애 밤 카페와 당신 안차애 밤 카페에 나와 통창 앞에 앉습니다. 커피는 시늉으로 들고 어둠이 불린 식구들을 둘러앉힙니다. 창 안의 사람과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이 나를 회전축으로 한 화면 속에서 다정하게 겹쳐집니다. 창밖의 남자들과 창 안의 아가씨가 식구처럼 무심한 사선의 건너편에 앉아 있습니다. 밤의 스크린은 검푸르고 열기와 밀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화면을 조절합니다. 밤의 테이블에 식구들을 차립니다. 떠다니는 입과 다소곳한 귀, 모서리 없는 시선과 피곤한 자세를 소복소복 차립니다. 귀만 내밀어 주어서 고마운 당신 입을 가려주어서 귀여운 당신 어깨가 둥글거나 시선이 다소곳한 당신 밤의 리듬처럼 조금씩 흔들리거나 풀어지는 당신들 떠난 기차처럼 밤은 멀고 다시 만날 일 없는 공기와 온도처럼 밤의 얼굴들은 제각각의.. 2024. 8. 17.
킬리만자로에 가기 위하여 / 송재학 킬리만자로에 가기 위하여 송재학 유칼립투스 나무 그림자 백 미터 높이의 수피에는 오래된 상형문자가 빼곡하다 하지만 나는 비염 때문에 작은 화분을 들여놓고 낡고 오래된 책을 정리했다 피를 잉크로 사용했다는 서문, 광합성에 가까운 독후감, 꺾어버린 책등의 이름, 청춘을 자극했던 세로쓰기, 모래로 쌓은 둑 안에 해일처럼 가둔 마흔 살, 게으른 늙은 책, 글자가 너무 작아 낮달에 갇힌 문고본까지 언젠가 이 책들을 다시 읽겠다는 표정에는 초식동물의 긴 목이 있다 『시인학교』(김종삼 시집, 신현실사, 1977)와 『한국전후문제시집』(세계전후문학전집 8권, 신구문화사, 1961)을 함께 묶은 비닐 끈이 초현실주의에 매달린 것처럼 어디서나 우후루봉이 잘 보인다는 킬리만자로의 공허에 휩쓸려서 종일 책을 뒤적이다가 유리창.. 2024. 8. 17.
인간의 심리적 미로 : 칼 융의 원형과 상징의 세계 https://naver.me/FzQV9ChI 인간의 심리적 미로: 칼 융(Carl Jung)의 원형과 상징의 세계분석심리학의 가정 분석심리학은 칼 융(Carl Jung)의 심리학 이론으로, 체험에 근거한 이론입니다. 칼 융...blog.naver.com 분석심리학의 가정 분석심리학은 칼 융(Carl Jung)의 심리학 이론 으로, 체험에 근거한 이론입니다. 칼 융은 정상 인과 정신장애 환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마 음을 관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살펴본 경험 을 토대로 이론을 형성했습니다. 이 이론은 객관 적인 사실이나 절대적인 진리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분석심리학 은 각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실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습니.. 2024.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