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1716 겨울, 카르맨 / 서경은 겨울, 카르멘 서경온 검은 옷을 걸쳐도 흰 꽃을 던져도 타오르는 불 카르멘은 빨강이다 치렁치렁한 머리칼 쓸어 올리며 겹겹이 리플 달린 치마폭 사이 종아리에서 허벅지까지 드러날 듯 말 듯 숨결 가빠지는 하바네라의 춤 조심하라는 말 거꾸로 주문이 되어 막다른 골목에서 칼을 맞고 쓰러질 때까지 오늘도 사윌 줄 모르는 너와 나의 이야기 잡았다고 생각하면 달아나는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새라고 카르멘은 노래한다 겨울 찬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본 배반의 불꽃놀이 한바탕 빗금 치는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핏빛 아름다웠다. —계간 《문학청춘》 2023년 겨울호 ---------------------- 서경온 / 1956년 충북 제천 출생. 198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하늘의 물감』 『흰 꽃도 푸르다』 『당신이 .. 2024. 1. 21. 꽃자루에 꽃 하나씩 피는 목련 / 김사인 꽃자루에 꽃 하나씩 피는 목련 고두현 꽃 피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데 네 끝에서 처음 피는 꽃과 내 속에서 마지막 피는 꽃이 물망초처럼 좌우 교대로 피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만나고 합치고 꽃 피우느라 이만큼 아래위 앞뒤 서로 부볐으니 이제는 누가 먼저 꽃씨 열매 품었는지 넌지시 속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을라나 몰라. —계간 《미네르바》 2023년 겨울호 ---------------------- 고두현 /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2024. 1. 13. 성웅聖雄 / 김사인 성웅聖雄 김사인 명량 노량도 눈물겹지만 아아, 판옥선 흘수선 아래 묶여 죽자 사자 노를 젓다 죽어간 장정들 그 숱한 장정들의 처 자식 어미 아비들. —월간 《現代文學》 2024년 1월호 ------------------------- 김사인 /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시와경제〉 창간동인으로 참여.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등.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2024. 1. 13. 관람 / 이소연 관람 이소연 결혼하기 전에는 천경자의 그림을 봤고 아이 달고 와서는 미술관 바깥의 매미와 잠자리 구슬아이스크림과 아이스아메리카노 슬리퍼와 나른한 오후를 봐 미술관에서 나는 그림에 섞이지 않고 색이 가진 침묵이 불편하다 흔들의자가 있고 미루나무가 있고 산책로가 있는 북서울미술관 야외 데크 지렁이를 뱀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고 죽은 지렁이에 개미가 모여 있다 관람이란 말이 조금 낯설어 미술관에 오니까 여기저기 다 관람 중 어떤 사람은 귀뚜라미 뒷다리만 걸어 놓고 가을이라 하겠지 그런 건 즐겨도 되는 걸까? 바람은 제 갈 길로 가 저물면서 왜 나뭇잎을 뒤집고 가는지 나는 왜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할까 그러나 내 품에서 떨어져나온 아이를 보고 있으면 삶이 화폭 같고 전시회 같고 미술관 같아 머리에 뱀을 쏟아 .. 2024. 1. 13. 연두의 습관 / 조용미 연두의 습관 조용미 연두는 바람에 젖으며, 비에 흔들리며, 중력에 솟구쳐 오르며, 시선에 꿰뚫리며 녹색이 되어간다 웅크렸다 풀어지며 초록의 세계로 진입하는 견고함이다 초여름 햇살이 개입하는 감정들이 차례차례 나뭇잎을 두드린다 장대비에 튕겨 나간 초록들이 아스팔트에 흥건하다 황금비가 쏟아진 수목원 그늘진 바닥에 신비한 노란빛들이 꿈틀거린다 노랑과 초록의 지층이 켜켜이 쌓인 순간들이라면, 모감주나무의 본관은 연두이기에 환희와 적막이 어긋나고 마주 보는 잎사귀들을 달게 되었다 —월간 《현대시》 2023년 5월호 2024. 1. 13. 황정산 평론집 『소수자의 시 읽기』 황정산 평론집 『소수자의 시 읽기』 시인의 윤리와 소수자로서의 시인 시인은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쉽게 말해 불량함이 윤리가 되는 존재이다. 세상의 가치에 반하고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며 권력이 쳐 놓은 질서를 애써 거부하는 불량함을 통해 삶과 세상을 성찰하는 윤리를 실천한다. 비윤리 또는 탈윤리가 윤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가치에 순응하고 규범화된 윤리를 맹종하는 시인은 비윤리적이라 단언할 수 있다. 더러 그러한 시인들이, 기존의 가치관에 안주하며 위안을 느끼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거나 권력의 시혜를 얻어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규범의 강요에 신음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속박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라 할 수 있다. 종교적 교의를 설파하고 정.. 2023. 12. 6. 세계유산에 이름 올린 가야고분 7곳의 특징과 주요 유물 https://v.daum.net/v/20230917213012012 세계유산에 이름 올린 가야고분 7곳의 특징과 주요 유물은(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17일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가야v.daum.net https://v.daum.net/v/20230917213405063 "가야고분군, 인류가 보호해야 할 유산이자 대한민국의 쾌거"(전국종합=연합뉴스) 고대 국가 가야의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1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과 관련해 고분군이 분포하는 지자체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냈다. v.daum.nethttps://v.. 2023. 9. 17. 겹벚나무를 베다 / 김명기 겹벚나무를 베다 김명기 아버지가 산자락 개울가에 집을 짓고 삽자루 같은 묘목을 심은 겹벚나무 허벅지보다 더 굵게 자라는 동안 봄 한철 분홍 솜뭉치처럼 피는 꽃이 보기 좋았다 이십 년 넘는 동안 나무는 다부지게 자랐지만 그런 몸을 불리느라 굵어진 가지가 바람 심한 날이면 지붕을 두드리거나 창문을 긁어댔다 꽃이 좋았던 나무는 날이 갈수록 근심과 함께 커갔다 꽃 지고 물이 올라 이파리가 손바닥만 한 나무를 쳐다보다가 지붕 위로 자란 단단한 나무 중동을 베어내기로 했다 사다리에 올라 톱날을 밀어 넣자 마디를 벌리며 살아내느라 옹골진 삶이 톱날을 쉽게 받지 않았다 꺾이지 않으려 톱날을 물고 버티는 나무를 힘주어 잘라내며 톱날 같던 불온과 불운을 견디던 시절을 생각했다 나무나 사람이나 절정의 순간을 무너뜨리기란 쉽.. 2023. 9. 16. 중얼거리는 사람 / 정병근 중얼거리는 사람 정병근 부유음(浮游音) 한 소절이 종일 뇌리에 붙어 다닌다 그것은 끓고 있는 죽 같고 뚜껑 없는 냄비 같다 다 퍼낸 바닥에 고이는 물처럼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가 툭 튀어나온다 그래야 한다는 듯이 다음을 기약하는 말끝에 속말이 따라붙는다 쳐다보는 표정 뒤로 눈이 숨는다 너의 말을 내놔라 말이 있어요 할 말이 있어요 몸 안에 말이 있다고 눈을 껌벅이며 울먹이던 사람을 보았다 가지가 몽땅 잘린 나무둥치의 옆구리를 뚫고 툭 튀어나오는 꽃처럼 목구멍을 기어 나오는 선충들처럼 잘린 곳에 실가지가 무수히 뻗어 나온다 다 게우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말의 뒤통수에 미운 말이 들끓는다 곡을 끝낸 상주는 한 번씩 음, 음, 하고 자신의 목청을 확인한다 말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죽은.. 2023. 8. 27.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과 아내 오르탕스 https://v.daum.net/v/20230610070316193 "못생긴 악녀로 유명"…남편 장례식도 안 간 그녀의 '반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못났다, 못났어. 호호호…. 저 그림 속 여자 좀 봐. 정말 너무하지 않아?” 190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가을 박람회. 1년 전 세상을 떠난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1839~1906)의 초상화 작v.daum.net 2023. 6. 11. 이전 1 ··· 3 4 5 6 7 8 9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