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1758 젖은 생각 / 권현영 젖은 생각 권현영 마른 빨래에서 덜 휘발된 사람의 온기, 달큰한 비린내를 맡으며 통증처럼 누군가 욱신욱신 그립다 삼월의 창문을 열어 놓고 설거지통 그릇들을 소리나게 닦으며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자꾸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다 온 집안을 빙글빙글 바람개비 돌리며 바람이 좋아 바.. 2009. 2. 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ip Toe photo by Bettina Salomon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 . . . 어떤 결단이 올바른 것인가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비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을 한다. 최초로 준비 없이 체험을 한다.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같다. 하지.. 2009. 2. 18. 바람의 말 / 룽다 티벳에서 / p r a h a *룽다-바람의 말. 룽다란 바람이란 뜻의 '룽'과 말이란 뜻인 '다'가 합쳐진 티베트 말이다. 룽다는 긴 장대에 매단 한 폭의 길다란 깃발이고 타르초는 긴 줄에 정사각형의 깃 폭을 줄줄이 이어달은 것으로 만국기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룽다는 말 갈퀴가 휘날리는 모습을 뜻한다. .. 2009. 2. 17. 동백꽃 / 문정희 동백꽃 문정희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 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차마 발을 내딛.. 2009. 2. 16. 캐서린의 마지막 편지 잉글리쉬 페이션트 캐서린의 마지막 편지 내 사랑... ...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어둠속에 얼마나 있었지? 하루? 일주일? 이제 불도 꺼지고 너무나 추워요. 밖에 나갈 수가 있다면 해가 있을텐데 그림을 보고 이글을 쓰느라 전등을 너무 허비했나봐요.우린 죽어요. 많은 연인들과 사람들이 우리가 맛본 .. 2009. 2. 16. 바람의 경치 / 심재휘 바람의 경치 심재휘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와 또 어느 봄날 느티나무 저 높은 가지 끝에도 물이 오를까 싶은 지방도로 끝난 곳에서 우리는 무슨 잎을 피우나 이제 그대에게 어떤 편지를 쓰나 그리운 당신 더 쓸 말은 없구려 이만 생각하면 언제나 누군가 옆에 있었건만 바다로 이어진 제방에 나는 늘 혼.. 2009. 2. 14. 안개, 여관, 물소리 / 심재휘 안개, 여관, 물소리 심재휘 수몰된 것들의 마음이 밤새 자욱하게 내려앉아 내가 든 안동역전 여관방에는 어디로 가는지 첫 기차 소리가 축축하였는데 미명 속으로 멀어지는 누군가의 젖은 발소리도 용서하고 싶었는데 창가에 놓아둔 선인장의 적의에 놀라 세수를 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다시 침대에 .. 2009. 2. 14.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 박서영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박서영 일몰 무렵이던가 아이를 지우고 집으로 가던 길 태양이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갔다 그 후론 내 몸에 온통 물린 자국들이다 칸나를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칸나 잎사귀 사이에 투명한 거미집 불룩한 배에 노란 줄무늬의 거미가 천천히 허공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 불룩.. 2009. 2. 13. 숯 / 박서영 숯 박서영 사라졌다가 다시 태어나는 태양과 달과 별처럼 이 검은빛 덩어리가 품고 있는 나무의 혈관 불의 씨앗 멈춰선 맥박 위에 삶을 얹으면 저렇게 순식간에 불의 덤불이 우거질 줄을 당신은 진정 몰랐단 말인가요? 2009. 2. 13. 저녁의 집 / 박서영 저녁의 집 박서영 생선궤짝들이 흘리는 냄새는 지독하다 어렴풋한 추억이라고 누군가 거짓말을 했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모든 만남이 농담처럼 지나가지만 그대가 떨어뜨린 눈알과 입술과 호흡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갈치였다가 조기였다가 고등어였다가, 서로를 채우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 2009. 2. 13. 이전 1 ··· 157 158 159 160 161 162 163 ··· 17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