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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441

느리게 청량사에서 / p r a h a 느리게 / 나호열 우체국은 산 속 저물녘에 있다 이 가을에 나는 남루한 한 통의 편지 산길 초입 그리고 저물녘에서 느릿느릿 우체국을 찾아간다 블랙홀처럼 어둠은 황홀하다 문득 아찔한 절벽 위에 몸을 가눌 때 바위에 온 몸을 부딪치고 으깨어지면서 물은 맑고 깊어지는 흩날리.. 2007. 11. 13.
헌츠빌 가는 길 Late Autumn 헌츠빌 가는 길 / 나호열 나는 기억한다네 지금껏 지나왔던 길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눈감고도 훤히 바라볼 수 있다네 지금껏 지나왔던 길이 내 몸을 묶었던 오랏줄이었다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실타래 같을 것이네 더 멀리 가보려고 발버둥치는 더 빨리 닿으려고 .. 2007. 10. 28.
[신간시집]당신에게 말 걸기 / 나호열 [신간시집]당신에게 말 걸기 지은이-나호열 펴낸곳-예총출판부 http://www.yechong.or.kr 당신에게 말 걸기 /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 2007. 10. 22.
산사에서 / 나호열 산사에서 / 나호열 풍경소리에도 자그맣게 흔들리는 달빛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천 년을 내내 눈 떠 있는 석불의 입술은 앞산 나무들을 흔드는 바람이 되고 싸락거리는 소리 반야심경을 읊으며 냇물로 흘러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그믐의 달빛 두드릴수록 허물어져 내리는 육신.. 2007. 10. 18.
밤에 쓰는 편지 / 나호열 밤에 쓰는 편지 / 나호열 먹을 갈아 정갈해진 정적 몇 방울로 편지를 쓴다 어둠에 묻어나는 글자들이 문장을 이루어 한줄기 기러기 떼로 날아가고 그가 좋아하는 바이올렛 한 묶음으로 동여맨 그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올려 드리면 내 가슴에는 외출중의 팻말이 말뚝으로 박힌다 내가 묻.. 2007. 10. 11.
시간을 견디다 시간을 견디다 / 나호열 진부령 고개를 넘어오다가 짐칸에 소나무 한 그루 태운 트럭을 앞세웠습니다. 느릿느릿 구비를 돌 때마다 뿌리를 감싼 흙들이 먼지처럼 떨어져 내렸습니다. 마치 제 집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발자국을 남기려는 것처럼, 눈물처럼 떨어져 내렸습니다. 늙으면 우리는 산으로 .. 2007. 9. 24.
사진/praha 창 / 나호열 창을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니 처음에는 길고 높은 벽이 보였다. 그 벽에 다시 구멍을 내자 하늘은 실핏줄같은 강 내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마음의 창에 가득 번져오르던 울음 빛은 흘러가야만 보인다 창과 구멍을 구별하지.. 2007. 9. 19.
오래된 책 오래된 책 / 나호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가 지루하게 갈피 속에 숨어들어 납작해진 벌레의 상형에 얹혀있다 매일 내려 쌓이는 눈 위에 발자국처럼 길게 어디론가 마침표를 끌고 가는 주 인공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쌓이는 세월보다 녹아 스며드는 속도가 훨씬 빨라 수심 이 깊은 호수가 출렁.. 2007. 9. 15.
강물에 대한 예의 p r a h a 강물에 대한 예의 / 나호열 아무도 저 문장을 바꾸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 이야기인지옮겨 적을 수도 없는 비의를 굳이 알아서 무엇 하리한 어둠이 다른 어둠에 손을 얹듯이어느 쪽을 열어도 깊이 묻혀버리는 이 미끌거리는 영혼을 위하여 다만 신발을 벗을 .. 2007. 9. 7.
파문 波紋 / 나호열 파문波紋 / 나호열 나를 보고 방긋거리는 어린 아기의 웃음이 가슴에 물컹 닿는다 말을 배우기 전에 말의 씨앗이 꽃이라는 것을 부드럽게 구름과 구름이 만나듯이 잔 물결이 일어난다 뿌리 채 고스란히 뽑혀 어디론가 높은 고개를 넘어가던 소나무의 정적이 저만큼 푸를까 이 세상의 모든 말들은 꽃에.. 2007.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