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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445

길을 찾아서 길을 찾아서/ 나호열 옷고름 여미듯이 문을 하나씩 닫으며 내가 들어선 곳은 어디인가 은밀하게 노을이 내려앉던 들판 어디쯤인가 꿈 밖에 떨어져 있던 날개의 털 길 모퉁이를 돌아 더러운 벤치에 어제의 신문을 깔고 누운 사람이여 어두운 계단을 점자를 읽듯이 내려가며 세상 밖으로 쫓기듯 떠나가.. 2008. 7. 25.
탑과 벽 탑과 벽 / 나호열 하찮은 돌멩이들도 쌓으면 탑이 된다 절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늘 그윽한 발걸음으로 서있는 그대를 만나기 위해 하늘을 받치고자 함이었는데 아, 나는 탑이 되지 못하고 벽이 되었구나 얼굴에 가득한 낙서 급전대출과 주점 안내문 가까운 것은 주검이고 그대의 하늘을 가리고만 있.. 2008. 7. 6.
별에게 별에게 / 나호열 나도 그런 눈빛으로 깊이, 너의 가슴에 묻히는 무덤이 되고 싶다. 시집-[망각은 하얗다] (1990년 초판 인쇄) 2008. 7. 6.
물안개 - p r a h a 물안개 / 나호열 앞이 캄캄하고 하늘은 더 막막할 때 나는 물안개를 보러 간다 물이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향기도 없고 형체도 없는 물방울 꽃들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미는지 몸의 슬픔마저도 함께 배워 버렸다 물은 고독을 닮아 너무 물렁물렁해서 헤집을수록 더 깊.. 2008. 6. 29.
나무 사진/ 장자의 꿈 나무 / 나호열 단 하나의 기둥 위에 단 하나의 깊고 단단란 하늘을 얹기 위해 나무는 수 많은 주석을 눈물대신 달아 놓았다 2008. 6. 11.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사진 / p r a h a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나호열 혼자 서지 못함을 알았을 때 그것은 치욕이었다 망원경으로 멀리 희망의 절벽을 내려가기엔 나의 몸은 너무 가늘고 지쳐 있었다 건너가야 할 하루는 건널 수 없는 강보다 더 넓었고 살아야 한다 손에 잡히는 것 아무 것이나 잡았다 그래, 지금 이 .. 2008. 6. 1.
그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 / 나호열 파도처럼 밀려오는, 두통 같은 고독 때문에 슬프다고 그가 말했다. 황선홍 선수가 골 을 넣고 세 번 손을 내저었던 것은 아내에게, 딸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보낸 자랑스 런 선물이라고 벌써 사 년 전 얘기인데 티브이 화면 속에서 눈물이 울컥거릴 때였 다. 마침 아무도 없는 텅 .. 2008. 5. 19.
사진 / p r a h a 창 / 나호열 창을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니 처음에는 길고 높은 벽이 보였다. 그 벽에 다시 구멍을 내자 하늘은 실핏줄같은 강 내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마음의 창에 가득 번져오르던 울음 빛은 흘러가야만 보인다 창과 구멍을 구별.. 2008. 5. 6.
약속 / 나호열 약속 나호열 먼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다시 먼 길을 돌아가라고 말 하는 대신 나는 그의 신발에 입맞춤하겠네 힘든 오르막 길이었으니 가는 길은 쉬엄쉬엄 내리막 길이라고 손 흔들어 주겠네 지키지 못할 것이기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기에 약속은 사전에 있는 것이네 그대가 왔던 길을 내가 갈 수는.. 2008. 4. 24.
이방인 이방인 / 나호열 못을 친다 다 흘러가 버린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남은 이름이라도 걸어두려는지 못을 칠 때마다 울음이 쿵쾅거린다 아직 견고하게 남은 벽이 그렇지 않으면 자꾸 뭉툭해져 튀어오르는 못이 일으키는 시퍼런 안광 새들의 지저귐을 읽어내지 못하면서 꽃들이 개화하는 고통을 듣지도 못.. 2008.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