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行 / 나호열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은 무릎 꿇는 일이었다
수치도 괴로움도 없이
물 흐르는 소리를 오래 듣거나
달구어진 인두를 다루는 일이었다
오늘 벗어 던진 허물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때와 얼룩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함부로 팽개치지 않는 사람은
자동세탁기를 믿지 않는다
성급하게 때와 얼룩을 지우려고
자신의 허물을 빡빡하게 문지르지 않는다
마음으로 때를 지우고
마음으로 얼룩을 지운다
물은 그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데리고
때와 얼룩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빨랫줄에 걸려 있는 어제의 깃발들을 내리고
나는 다시 무릎을 꿇는다
때와 얼룩을 지웠다고 어제의 허물이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구겨진 내 삶처럼
무늬들의 자리를 되찾기에는 또 한 번의
형벌이 남겨져 있다
쓸데없이 잡힌 시름처럼 주름은
뜨거운 다리미의 눌림 속에 펴진다
내 살갗이 데이는 것처럼 마음으로 펴지 않으면
어제의 허물은 몇 개의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 놓고 만다
부비고, 주무르고, 헹구고, 펴고, 누르고, 걸고
평생을 허물을 벗기 위해
오늘도 무릎 꿇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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