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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심해의 사랑 / 길상호

by 丹野 2019. 8. 11.

심해의 사람

 

   길상호

 

 

 

어떤 빛도 닿을 수 없는

바닥에 내려가 산다 했어요

심장의 열수분화구를 식혀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요

우울도 지그시 수압으로 눌러놓고

텅 빈 눈의 유령 상어처럼 떠돌다 보면

이따금 내려앉는 기억의 사체들

물컹한 살점이나 뜯으면서

시간의 색깔은 의미가 없다 했어요

그래도 목숨은 즐거움을 원해서

몸을 켰다가 껐다가 발광 놀이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놀이,

암흑의 바다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뭍으로 돌아갈 수 없다네요

결 고운 바닥에 어서 뼈를 내려놓는 게

지금의 유일한 희망이라 말하는

그는 심해를 사는 사람, 돌아서는 등에

날선 지느러미가 돋아 있었어요

 

 

            ⸺계간 시인수첩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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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2001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눈의 심장을 받았네』『우리의 죄는 야옹, 사진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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