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사람
길상호
어떤 빛도 닿을 수 없는
바닥에 내려가 산다 했어요
심장의 열수분화구를 식혀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요
우울도 지그시 수압으로 눌러놓고
텅 빈 눈의 유령 상어처럼 떠돌다 보면
이따금 내려앉는 기억의 사체들
물컹한 살점이나 뜯으면서
시간의 색깔은 의미가 없다 했어요
그래도 목숨은 즐거움을 원해서
몸을 켰다가 껐다가 발광 놀이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놀이,
암흑의 바다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뭍으로 돌아갈 수 없다네요
결 고운 바닥에 어서 뼈를 내려놓는 게
지금의 유일한 희망이라 말하는
그는 심해를 사는 사람, 돌아서는 등에
날선 지느러미가 돋아 있었어요
⸺계간 《시인수첩》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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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눈의 심장을 받았네』『우리의 죄는 야옹』외, 사진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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