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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철학가 탁석산의 행복보다 좋은 삶

by 丹野 2013. 8. 9.

 

철학가 탁석산의 행복보다 좋은 삶

레이디경향 | 입력 2013.07.08 16:14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헷갈릴 때가 있기는 하다. 어떤 사람은 쾌락이 행복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앞뒤에 붙여 조합된 새로운 용어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행복의 모호함과 함께 사방팔방에서 행복, 행복 하니 스트레스가 된다. 학창 시절, 공부가 중요한 줄 알면서도 모두 공부, 공부 하니까 짜증이 났던 것처럼 말이다. 이쯤 되면 '행복이 있긴 한 건가?'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신문 광고에서 「행복 스트레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지은이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않을 철학가 '탁석산'이었다. 책을 읽어보았다. 행복이라는 것이 본래 없었거나 만든 지 2백 년밖에 안 되는 모호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균형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인터뷰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는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행복은 불행과 같이 온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이전의 인터뷰이들을 이야기하며 탁석산(55) 박사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되물었다. 행복연구소를 운영한다는 필자의 명함을 들고는 자신이 인터뷰 컨셉트와 맞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누구나 상식처럼 생각하는 행복에 관련해서 딴죽을 걸자니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행복'이란 것은 공리주의 틀에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벤담이 2백 년 전에 만든 슬로건이지요.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의 행복 총량을 늘리자는 의견을 내놓았죠."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에 의해 자유경제주의의 원칙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개념 속에서 행복이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탁 박사는 당시 사람들도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고, 2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 최대 행복을 어떻게 산출하느냐, 이건 처음부터 문제였거든요. 행복을 계산하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냐고 묻자마자 답이 돌아왔다.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불행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행복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노력하잖아요. 그래도 결국 행복과 불행은 한 세트거든요. 행복이 없으면 불행도 없고,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으니까요. 행복이 있는 한 결코 불행이라는 건 없어지지 않죠. 결국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는 거죠. 왜냐? 언제나 행복과 동시에 불행이 있는 거니까. 이런 개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틀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행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이 따라오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많은 학자들은 행복을 연구하고, 정치가들은 행복을 이야기하고, 사회운동가는 공동의 행복을 논해야 하는가?

"그게 장사가 되잖아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김 박사님도 장사를 하고 계시잖아요. 행복을 파시잖아요. 엄청나게 장사가 되잖아요. 끊임없이 장사할 수 있는 이 아이템을 없앨 이유가 없는 거죠."

시니컬한 답변이 이어졌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행복을 주제로 먹고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른바 성공학 강연자 혹은 관련 서적 저자들이 그런 사람들에 속한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사여구로 사람을 홀리고 정당하지 못한 부를 축적한다면 '장사꾼'이라고 지탄받는 게 마땅하다. 내게도 장사를 한다고 했다. 고백하건대, 나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 늘면 내게는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그 대가로 행복을 얻는 것이 장사라고 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제가 타고온 지하철에 행복 열차라고 쓰여 있어요. 행복한 열차가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타야 행복한 건지. 그냥 친절한 열차, 쾌적한 열차, 깨끗한 열차 이런 건 알겠는데 행복한 열차는 대체 무슨 말인지(웃음)."
행복 열차.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쾌적한, 편리한, 편안한 열차라는 의미를 함축해 행복 열차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맞아요. 그렇게 여러 가지 개념이 있겠지만 '행복'에 흡수돼서 아무 개념이 없게 만든 거죠. 결국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그 열차를 타면 어떻게 행복해진다는 건지, 그 이유는 없는 거죠. 그걸 따로따로 표현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그는 '나 행복해!'를 어떻게 표현할까? 그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저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른 말로 합니다. '즐겁다'라든가, '기쁘다'라든가. 그렇게요."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 때 제일 '기쁘다'라고 했다. 여행을 하거나 야구를 볼 때 '좋다'라고 했다. 외국 여행지로는 일본의 교토를 제일 좋아하는데 '쾌적해서'라고 했다. 감정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았다.





대체 행복이 무엇이기에
대화 도중 의문이 생겼다. 행복은 힘든 사람에게 희망과도 같다. 희망이라는 것을 없애버린다면 인류는 존속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사람은 늘 즐겁게 살고 싶어 하지요. 그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의할 거 같아요. 일부러 고통 속에서 살겠다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에요. 예전 사람들도 당연히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했을 거고요. 문제는 뭐냐면, 행복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부터 그것이 지상 최고의 가치가 됐다는 거죠. 옛날에는 즐거움을 위해 산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거든요. 세속적이라 지탄받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누구나 동의한다는 거죠. 행복이 이데올로기가 됐다는 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강요로 작용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이데올로기를 따르든, 아니면 반역자가 되든 해야 한다. 그런데 행복이 어느 순간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이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남녀가 헤어졌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행복하지 않다'라는 거예요. '상대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물으니까 잘못한 거 없대요. '그럼 왜 헤어지느냐?'라고 하니까 행복하지가 않대요. 그걸로 끝이에요. 대화가 끝나는 거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전 그게 이상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이 무슨 이데올로기이기에 '나는 행복하지가 않다'라고 하면 그걸로 대화가 종료되면서 관계가 끝나느냐고요."

이별을 통고하는 연인의 핑계가 행복이라니…. 그는 행복이 몰고 오는 부정적 측면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논어」를 보면 공자가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잖아요. 그걸 바꿔서 '아침에 행복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그렇게 말할 사람이 이 시대에 누가 있겠어요?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행복하면 저녁에도 계속 행복하고 싶다', 아니면 '더 행복하고 싶다'라고 대답하겠죠. 행복이란 개념은 자본주의와 결합해서 더 많은 걸 추구하거든요. '당신, 30평형 아파트에 살죠? 50평형에 살면 더 행복해집니다. 당신의 옷은 얼마짜리입니까? 여기 명품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는 건데, 이게 당신에게 행복을 줍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행복의 조건 중 돈은 적어도 안 되지만 많아도 부질없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조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빈곤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불행감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가 걱정하는 것은 행복 자체라기보다는 행복이 사회 전체에 끼칠 나쁜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죠. 그게 이데올로기가 돼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자살하는 사람들만 해도 '행복하지 않다. 따라서 우울하다. 나는 실패자다'라고 하거든요. 사람이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닌데 왜 행복하지 않으면 우울하고 실패자라며 자신을 규정하고 그게 죽음에 이르는 정당성이 되는가. 제가 보기엔 잘못된 틀이라는 거죠. 다른 이유로 충분히 살 수 있는 건데."

완벽한 행복은 없다
탁 박사에 의하면 행복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어차피 있지도 않은 행복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우울해하는 것이 걱정이라 했다. 결국 행복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인생이 엄청난 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지향하는 인류의 삶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틀 자체를 버리고 좋은 삶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좋은 삶과 나쁜 삶 역시 한 세트로 오지 않느냐? 물론 한 세트로 옵니다. 하지만 좋은 삶이라는 건 행복과 달리 끝이 없어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거거든요. 축적이 있는 거죠. 행복은 축적이 없거든요. 오늘 행복했다고 해서 내일도 행복하다는 어떤 보장도 없잖아요? 어제는 100만큼 행복했는데, 오늘은 -100으로도 갈 수 있는 거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행복이란 쾌락이나 성취와 혼용되는 듯했다. 행복의 정의가 쉽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의는 '즐거움과 의미가 있는 지속 가능한 감정적 상태'를 의미한다.

"맞습니다. 문제는 논리학으로 얘기하자면 내포가 많아지는 거예요. 추가되는 조건이 많아지면 결국 외연은 좁아지거든요. 만약 즐거운 것이 행복이라고 하면 내포는 간단하잖아요. 그럼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많죠. 사기를 치는 사람은 즐겁잖아요. 그렇다면 그 사람도 행복한 사람인데 사회적 가치를 따지자면 사기꾼은 제외돼요. 남을 도와야 된다는 것에서도 제외되고, 건강해야 된다는 것에서도 제외되고. 내포가 자꾸자꾸 많아질수록 외연은 줄어드니까, 그렇게 따지면 행복한 사람은 거의 없는 거죠."

옳은 이야기다. 완벽한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외연이 넓어져야 완벽해지는데 내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루기가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 또한 성취주의적 결론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무엇보다는 완벽을 얻기 위한 과정 속에 행복이 있다. 등산에 나섰다면 산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야호'를 외쳐야 행복하겠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길모퉁이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물 한 잔 하는 것도 행복이지 않은가. 그리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행복한 것을 취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불행하게 살 텐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좋은 삶'이란 내포가 적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삶이라는 것은 어제보다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거예요. '좋은 일을 하면서 오래 사는 게 최고의 인간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행복한 인간보다는 좋은 인간이 더 객관적이에요."





이해가 잘 안 됐다. '좋은 삶'은 좀 객관적이다? 선과 악은 구분되고, 행복과 불행은 구분이 안 된다? 도덕적 판단의 기준 역시 세월에 따라 달라진다. 이전 같으면 여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행실이 좋지 못한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여자의 음주를 나쁜 행동으로 몰아붙이는가? 결국 '좋은'도 절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행복과 좋은 삶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힘들었다.

"제가 책을 쓰고 또 가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이 한참 듣다가 그런 말을 해요. '그럼 결국 좋은 삶을 살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닌가'라고요. 그 정도로 지난 2백 년의 주입식 교육이 주는 위력이 대단한 거죠. 전 그 개념을 버려야 좋은 삶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
그는 좋은 삶을 1/3 원칙이라는 것으로 정의했다. 만약 돈이 생긴다면 1/3은 자신에게, 또 1/3은 가족과 이웃에게 그리고 나머지 1/3은 사회를 위해 쓰면 바로 '좋은 삶'이라고 했다. 행복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에 대한 애정, 이웃과 가족에 대한 배려, 사회에 대한 책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삶을 위해서 어떤 가치가 필요할까?

"개인적으로는 평등이 중요한 거 같아요. 요즘 퇴직한 아버지의 비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은퇴 후 아무도 대우를 안 해줘서 장롱과 마찬가지의 삶을 산다고 하는데, 저는 그 주요 원인이 아버지한테 있다고 봐요. 그동안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때는 아버지가 갑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평등하지 않았다는 거죠. '내가 돈을 벌어오고 먹여 살리니까 내 말 들어야 된다. 시키는 대로 해라'. 그렇게 지배를 해왔어요. 가족 내에서 평등한 관계가 없었던 거죠. 평등한 관계가 없으면 자유가 없거든요."

최고 권력자는 외로운데, 그 이유는 평등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가정에도 이런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 가족이 평등한 관계가 돼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좋은 삶을 추구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 쉽사리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걸 부인하진 않아요. 좋은 삶을 택하면 갑자기 사람의 인생이 풀릴 것이다? 그럴 리 없죠.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그 사이에서 또 비교하고 그럴 거예요.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똑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비교하지 마라(웃음). 저는 그건 안 변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틀보다는 좋은 삶의 틀이 기본적으로 낫다고 봅니다."

행복보다는 좋은 삶이 비교가 덜 된다는 것이다. 소유나 돈이 행복의 요소로 강조된다면 그의 말은 100% 맞는 이야기다. 연봉이 높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면 당연히 연봉을 비교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은 불행에 빠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좋은 삶은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좋은 삶에 있어서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요. 경쟁에서 일등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니까요. 성취라는 건 목표가 있는 거잖아요. 어느 대학에 붙는다든지. 일등을 한다든지. 그런데 좋은 삶은 딱히 그런 게 없어요. 좋은 인간이라는 건 끝없는 수행이니까 그게 완성됐다고 볼 수 있는 건 없겠죠. 스스로도 잘 알고요."
주부들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조언을 구했다.

"인생은 100% 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는 절대자에게 의지한 거예요. '내가 뭘 해도 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라는 게 항상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좋은 남자랑 결혼하는 법? 이런 건 있을 수 없어요. 결혼해보니까 좋은 남편이고, 낳아보니 좋은 자식인 거죠. 그런데 그건 100% 운이거든요. 그러니까 좋을 때는 감사하고 운이 좋지 않으면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재 운이 좋지 않아서 힘들다면 일단 참아보라고?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생기는 걸까.

"참고 견디면 또 운이 오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저도 잘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게 예측 가능한 게 아니거든요. 그걸 받아들여야겠죠. 또 복잡하고요. 인생이 얼마나 불안하고 취약한 것이던가요. 자기 노력대로 되면 이 세상이 얼마나 편하겠어요. 제가 그럼 이거 하겠어요? 영화배우 하고 모델 해서 돈 벌지(웃음).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키 안 컸어요. 노력해서 되는 게 저는 거의 없다고 봐요. 그럼에도 '노력을 안 했으니 당신이 불행한 것이다', 그런 거는 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는 거죠."

끝으로 인터뷰 시작 전부터 궁금했던 탁석산이란 이름에 대해 물었다.
"네, 본명이에요. 아버님이 지으셨어요. '돌 산'인데요. 무슨 뜻인지 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아버님이 아시는 한자가 한계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탁석산 박사는…

1958년 서울 출생. 경기고 졸업 후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자연계열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입학 후 부전공이던 철학에 심취해 이후 동 대학원에서 흄의 인과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0년 낸 첫 번째 책 「한국의 정체성」이 IMF를 건너는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독설가 탁석산을 세상에 알렸다. 「한국의 주체성」,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철학 읽어주는 남자」, 「탁석산의 글쓰기」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성적은 짧고 인생은 길다」,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 등을 썼으며 KBS-1TV 'TV, 책을 말하다'의 MC를 맡기도 했다.

행복 디렉터 김진세가 전하는 7월의 제안
좋은 사람 되기


탁석산 박사는 좋은 삶이란 자신을 위해 1/3, 이웃과 가족을 위해 1/3 그리고 사회를 위해 1/3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모두의 행복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행복이거든요. 그러니 '좋은 사람'이 되면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달에는 좋은 사람이 돼봅시다. 너무 거창한 거 말고요. 어릴 적에 해보았던 '마니또'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요? 비밀 친구를 만들어 몰래 도움을 주거나 기뻐할 일을 해주는,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었지요. 이제는 이웃을 위해 해보는 거예요.

하루에 한 가지씩 소소하지만 보상을 바라지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는 선행을 해보자고요. 바캉스를 떠난 옆집 현관 앞에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면 슬쩍 치워주기, 비가 오는 날이면 확 당기는 파전이나 부추전을 조금 넉넉히 만들어 평소 도움을 주시는 분들과 나누어 먹기, 자칫 차바퀴에 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도로에 떨어진 돌이나 쓰레기 치우기, 깨끗하게 정돈된 공원이나 보행로에 버려진 쓰레기나 담배꽁초 줍기, 보행자와 옆 차선 운전자 배려하며 양보 운전하기,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어르신 짐 들어드리기 등등.

이렇게 한 가지씩 선행을 해나가면서 자기만의 비밀 노트에 적어봅시다. 귀찮다고 여기지 마세요. 나중에 읽어보면 뿌듯해집니다. 그 뿌듯함은 스스로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에너지가 되고요. 저녁 시간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한 좋은 일을 자랑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심성과 자부심이 자라납니다. 가족 전체가 행복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좋은 사람 되기, 어렵지 않지요?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여자 마음을 더 잘 아는 여성심리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는 한편, '행복연구소 해피언스'를 통해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요즘은 MBC-FM '여성시대-양희은, 강석우 입니다'의 월요일 코너 '마음학교'에 출연해 청취자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2008년 1월호부터 3년간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을 통해 서른여섯 명의 긍정 아이콘을 만나 그들이 가진 긍정의 힘을 독자들과 공유해왔다. 저서로는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심리학 초콜릿」, 「스타트 신드롬」,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 & 진행 / 장회정 기자 ■글 / 김진세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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