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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스크랩] [한옥순]나의 살던 고향은 삐라꽃 떨어지던 동두천

by 丹野 2013. 3. 8.

 

 

시 에세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삐라꽃 떨어지던 동두천

한옥순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게 아닌가 보다. 내 기억의 시간은 뒤로 가는 때가 종종 있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유년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모처럼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신 그날따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한 가락에 지그시 눈을 감아버리던 아버지...마루 끝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던 아버지가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입 속으로 불러본다. 그럴 땐 그때 그 시절의 아버지가 되어있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소식을 물어 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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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장 전할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황해도가 고향인 아버지, 6. 25 전쟁 때 가족들 모두 이북에 남겨둔 채 홀로 넘어와 자리 잡은 곳이 나를 생겨나게 한 동두천이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 이국 같은 타향에서 한 여자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고 살림을 꾸리던 아버지...새벽이면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생업의 장소인 미군부대로 달려 나가야 하는 아버지, 그 자전거를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해질녘쯤이면 골목 끝에 나가 기다렸다가 종종걸음으로 반겨 맞이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주머니 속에서 꺼내주던 까맣고 동그랗던 초콜렛 맛은 철모르게 어린 나에겐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말도 다르고 얼굴색도 아주 다른 미군이 하필이면 왜 우리 동네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 같은 건 궁금해 할 줄도 몰랐었다. 그저 동네에서 맛난 것을 종종 먹을 수 있는 부러움과 우러름을 받는 것이 미제사탕만큼이나 달콤했으니...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사는 캔터키 치킨 맛 같은 느끼하고 고소한 즐거움을 받고 살기에도 바빴으니...

  동네 애들에게 자랑삼아 빵과 과자를 나누어주던 큰 동생을 보시던 아버지는 그것은 노예자식이 하는 짓과 다름없으니 내 잘못이 크구나, 시며 한숨을 짓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나는 그 당시엔 꿈에서라도 할 줄 몰랐다. 그러다가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입학을 하고 낯선 선생님들의 생소한 가르침들을 배우며

머리와 가슴이 자라기 시작하고 생각과 생각이 어어 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을 무렵부터 듣고 보고 읽으며 깨닫던 어렴풋한 그 무엇, 알 수 없는 그 무엇들 때문에 두렵고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 무엇은 봉긋하게 올라오는 가슴 만큼이나 까닭모를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그리고 뜨거움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東豆川Ⅰ

 

김명인

 

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신호등

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

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

역두(驛頭)의 저탄 더미에 떨어져

몸을 버리게 되더라도

배고픈 고향의 잊힌 이름들로 새삼스럽게

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은 것을

발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덜미에 부딪혀 와 끼얹는 바람

첩첩 수렁 너머의 세상은 알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으리라

안으로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이제 벗어날 수 없어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떠나야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

김명인 시집:<동두천>(문학과지성사, 1979)

 

 

  어느 사람에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서있던 간이역 같은 곳, 또 어느 사람에겐 차마 떠나지 못하고 뿌리 내려야하는 애증의 종착역 같은 동두천, 비루하고 고단하고 지난한 나그네의 삶들이 모여 살던 곳, 눈 녹은 진창길 같은 곳, 주홍 글씨를 새겨 놓은 혼혈의 아이들, 수취인불명의 사연들을 안고 살던 사람들, 이름조차 버림받은 것 같은 서러운 곳 미군부대와 기지촌과 고아원의 동두천. 누군가에겐 망명의 땅이고 누군가에겐 치욕의 땅이고, 어떤 이에겐 타향이고  어떤 이에겐 고향인 동두천.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고 자란 내겐 태생지이고 고향이며 동시에 머나먼 스와니 강 같은 동두천. 국민학교 2학년 때이던가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가는 길을 공부하다 말고 나가 서서 뭔지도 모른 채 꼭 그래야만 하는 듯 흔들던 얼어터진 손들이, 시퍼런 군복들 지나면 '기브 미 쵸콜렛 !' 외치던 진절머리 치게 가난했던 입들이, 그 입들이 다 늙어가면서야 작은 소리로 던지듯 묻는다. 국산 엿 하나 먹어볼래? 라고...그래도 가슴 밑바닥에 남은 어떤 찌꺼기 같은 것은 토해낼 수 없었다. 동두천이 태생지며 삶의 터전인 내가 쉰 해가 넘어서야 이 詩의 독자가 될 줄을 동두천에 잠시 머물고 간 시인은 알고 있는지...

 

 

 

 

 

 

東豆川Ⅳ

 

김명인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열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성을 받아 비로소 이가든가 김가든가

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갓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强邊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며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 들리 없는 合衆國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김명인 시집:<동두천>(문학과지성사)에서

 

 

  어릴 적 우리 동네 언니 하나는 지날 때마다 양공주라며 사람들이 손가락질했다. 양키라는 미군과 결혼하면 공주가 되는 줄 알고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세상에는 양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왕자는 아니란 것을 내 키가 다 자라기도 전에 알았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서울서 오신 담임선생님께선 우리 식구는 미제만 먹고사는 줄 아셨나보다. 이후로 유난히도 영어발음이 엉망인 나를 보면서 버터는 구경도 못하고 산다는 걸 눈치 채셨다.

  중학교 3학년, 수학여행 길에서 남쪽에 산다는 남학생에게서 건네받은 쪽지에 서울시 천두동이라고 거짓주소를 적어 주며 마음 애틋해 하던 동두천, 어른이 다 되어서도 어느 쪽에 사느냐고 묻는 말에게 의정부쯤이요, 라고 얼버무리듯 답하곤 다른 얘기로 돌리던 심사를 들키지 않으려고 급하게 돌아서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날엔 집으로 오는 길에 이정표에서라도 이름을 볼라치면 왠지 가슴부터 먹먹해지는 우리 동네 이름 ‘동두천’내가 태어난 곳이 욕되는 소문들을 잔뜩 적어 몰래 던져 놓은 삐라처럼 뿌려져 돌고 도는 이유를 모르면서도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서울이면 어떻고 동두천이면 어떠냐고 혼자서만 되묻던 말은 순전히 거짓이었다.

  예서제서 날아와 뿌리내리고 사는 홀씨 같은 민초의 삶이 더 많은 동두천, 더러운 편견의 소문이 무성하게 돌고 도는 동네, 이름만으로도 홀대를 받는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분단의 비극 보다 멸시의 비극이 나는 더 무서웠다. 위로 가면 서울이요 아래로 가면 소요산인데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동두천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니 누가, 무엇이 나와 우리의 상처를 드러내어 놓는가. 보이기 싫은 상처, 덧나기 싫은 상처를 삼류영화 포스터를 벽에 걸어 놓듯 늘어놓는단 말인가.

 

 

 

 

마음의 정거장

 

김명인

 

집들도 처마를 이어 키를 낮추는

때 절은 국도변 따라 한 아이가 간다

그리움이여, 마음의 정거장 저편에 널 세워 두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

저기 밥집 앞에서 제재소 끝으로

허술히 몰려가는 대낮의 먼지바람

십일월인데 한겨울처럼 춥다

햇볕도 처마 밑까지는 따라들지 않아

바람에 구겨질 듯 펄럭이는 이발소 유리창 밖에는

노박으로 떨고 선 죽도화 한 그루

그래도 피우고 지울 잎들이 많아 어느 세월

저 여린 꽃가지 단풍들고

한 잎씩 저버리고 가야 할 슬픔인 듯

잎잎이 놓아 버려 텅 비는 하늘

 

 

-김명인 시집:<따뜻한 적막>(문학과지성사,1979)

 

 

  봄날이 한창일 때 누군가 나에게 동두천에도 봄이 오느냐고 물은 적 있다. 아마 나는 그저 크게 웃어주는 것으로 답했다고 기억된다.

  저마다의 사연을 보따리에 싣고 달리며 꽥, 하고 소리치던 기차가 전철로 바뀐 지 여러 해가 지났으니 아마 겨울도 그 시절 때보다 더 빨리 오는지 다른 동네 보다 먼저 추워진다. 그런 동두천에도 해마다 봄날은 온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리치던 기적소리와 왠지 가슴을 문지르고 지나갈 것처럼 위협적이던 탱크소리가, 손등이 터진 아이들이 빨간색 페인트로 낙서를 해대던 허름하던 벽들이, 가난하고 낮은 지붕들이, 비릿한 찌개 냄새로 가득 찬 골목 골목이, 동네 애들이 벌거벗고 뛰어들던 개울이, 개울 한쪽 돌멩이 위에 미군 군복을 연신 빨아 널던 어머니들이, 벙어리 여자가 빠져죽었다고 소문이 났던 옆옆집의 우물이, 미군부대로 출퇴근하던 자전거행렬이 문득 문득씩 그립기도 하다.

  헛간 바람벽에 그려졌던 벗은 여자의 그림은 아무도 떼어가지 않았는데 어디론가 사라졌고 휑하던 논바닥 위엔 거대한 시멘트 숲이 들어섰고 방죽이 앉았던 자리엔 시청이 턱, 허니 앉아있고 경원선 열차가 덜컹대며 달리던 철길 위엔 매끈하게 빠진 전철 1호선이 달리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는 텅 빈 성냥 통처럼 남아있고 기찻길 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미군부대로 출근 하던 아버지들은 모두 어디로 떠났는지 보이지 않아도 이름만은 남아있는 동두천...

동두천 출생인 내가 김명인 시인의 시집 東豆川을 읽으며 외지에서 고향사람 만난 것처럼 알 수 없는 반가움과 쓸쓸함이 들고 아스피린 하나 삼킨 것처럼 속은 아릿아릿해지고......,

어느 샌가 내 머리 숲도 자작나무 숲처럼 환해지고 있으니 세상의 모습도 그만큼 제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가 세월의 모진 매를 맞고 산 동두천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아무도 없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명인의 시, 동두천은 거친 세상과 아픈 세월을 지나 온 우리들의 한 조각만큼의 기억이고 추억이고 가난한 회상이다. 덧나기 싫은 상처이다.

   나는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해본다.아름답고 행복한 곳에서는 어떤 시가 나올까. 꽃 같은 시가 나올까, 명주실 같은 시가 나올까?

  비루하고 고단하고 그늘진 곳에서는 어떤 시가 나올까. 추하고 불행한 시가 나올까?

  한 편의 시가 어렵고 힘든 세상을, 아픈 사람을 구원 할 수 있을까?

  밥이 되고 돈이 되고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글쎄...내게 있어 詩는 그저 시일뿐이다. 다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오롯이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동안만큼은 행복하고 즐거울 뿐이다. 행복

해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면서 왠지 모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다. 하여 나는

나의 시를 찾아 마음의 길을 나서는 것이다. 나만의 풍경을 따라 길을 걷는 것이다. 그

일이 혼자 가는 겨울 길처럼 외롭고 두렵고 추울지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시이며 시관이다.

 

  일생동안 고향을 그리워만하시다 세상 떠나신 아버지 그리움의 유효기간은 아주 오래전에 끝났지만 나도 그 그리움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지 고향에 살면서도 자꾸만 오래전 내 집이 그리워진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 같은, 팝송 한 마디 같은, 쓸쓸하고 아름다운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작은 동네 골목 끝에 우리 집, 구들장이 까매지도록 뜨겁던 유년시절의 겨울아랫목 같은 시절은 너무 멀어져 가선 이젠 옛날이야기로만 남아있는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거다.

  노을이 걸터앉은 주방 창밖으로 전철 지나가는 게 보인다. 전철은 동두천역에서

당당하게 멈출 것이다. 그 다음다음 역은 소요산, 전철 1호선의 종착역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아메리카의 끝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이 길이 코리아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동두천, 하고 가만히 읽어보라. 아랫목에 꽁꽁 묻어두었던 밍크담요 속 밥주발처럼 얼마나 따뜻하고 순진한 발음인가. 나의 살던 고향은, 무수한 소문의 삐라꽃이 피고 떨어지던 동두천이다. 그리고 나는 1957년 동두천 출생이다.

 

 

 

 

한옥순 : 2000년『문학세계』 등단

시집 :『황금빛 주단』(2011, 원애드)

 

 

 

-『우리詩』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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